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서당 글 읽는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배울 때를 놓친 아이들이 서당에 모였다.변변한 학습공간이 있을 턱이 없었고 학동들의 집을 한 달씩 옮겨 다니며 공부를 했다.아이들은 수염이 한 뼘이나 되는 훈장 선생의 지도 아래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소학(小學) 같은 교본을 하나하나 익혔다.

봄이 오고 농사철이 시작되면 일손이 아쉬운 법이지만 이들의 학습공간과 시간은 불가침 영역이다.지금 정규 교육과정처럼 절대 학습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닐 테지만 농사일이 급하다고 아이들을 빼가거나 공부시간을 축내는 일이 없었다.서당이래야 특별한 교재나 학습도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거칠게 베껴 쓴 교본을 놓고 쓰고 읽는 것이 전부다.함께 글 읽는 소리는 울타리를 넘어 멀리 번져나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싶다.먹을 갈아 낡은 신문이나 거친 마분지 같은 것에 글씨 연습을 하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읽고 또 읽어 통째로 암송하는 것이 서당공부다.게을러지거나 태도가 흐트러지면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책 한권을 떼면 없는 살림이지만 떡을 하고 음식을 장만해 잔치를 벌인다.스승의 가르침에 감사하고 아이들의 공부를 격려하는 의식이다.

서당에 다닌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의 그 풍경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아이들은 글을 읽었고 마을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살았다.스승이 있기는 하지만 서당 공부란 맨몸으로 부딪쳐 스스로 터득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부모의 의지,아이들의 고군분투,마을의 응원이 어우러진 학습공동체가 바로 서당이었다.크고 작은 학교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 서당 풍경이 새삼 그리워진다.

온갖 기법이 요령이 동원되는 요즘공부와 비교하면 미련하기 짝이 없다.그런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최근 캐나다 워털루 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 “스스로 소리 내 읽는 것이 공부효과가 가장 크다”는 외신 보도가 주목을 끈다.학습과 기억은 스스로의 적극적 개입이 있을 때 효과적이라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라고 한다.새 학기가 시작되고 뭔가 도전하기 좋은 때다.서당공부 흉내라도 한 번 내볼까 싶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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