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교신 춘천여성민우회 활동가
▲ 김교신 춘천여성민우회 활동가
어제는 은행에서 1062원을 송금하기 위해 수수료 500원을 내야 하는 조금 우스운 상황이 있었다.올해 보조금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강원도양성평등기금 운용 통장에 쌓인 이자를 반환하고 0원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은행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직장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명함을 건네며 민우회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특히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NGO 단체로서 며칠 전 3·8세계여성의날에 #미투운동 을 지지하는 도심 행진도 했다고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소개했다.볼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다른 은행원 한분이 쫓아 나왔다.메갈이니 워마드니 하는 과격한 단체들의 본거지는 대체 어디냐면서 자신의 딸이 그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친구로부터 너는 왜 동참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기에 그런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심기를 표했다.

페미니스트도 가장 온건한 쪽부터 가장 ‘과격한’ 쪽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젊은 층이 그렇게 하는 건 남자들에게 부드럽게 말하니 못 알아들어서 그들의 언사를 거울처럼 흉내 내는 ‘미러링’전략을 쓰는 것인데 그 방식을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을 모르고 살 수는 없으니 그것을 상처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 기회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의 책을 좀 읽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대답했다.

사실 페미니즘은 알면 불편한 것이긴 하다.익숙한 생각을 깨고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우리 활동가들은 말한다.페미니즘을 알고부터 TV를 편히 볼 수 없게 됐다고.여성의 적을 여성으로 상정하는 성차별적 막장 드라마,아이돌 그룹 소녀들의 성적 대상화,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지나친 노출 때문이다.또 내 삶은 어떤가.내가 좀 더 참고 시간을 할애하고 몸을 움직이고 희생하고 가사를 도맡으면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장한 생각은 결국 내게는 암을 유발하고 남편과 자녀들에게는 그들의 인간적 성숙을 막는 걸림돌일 뿐이란 걸 알게 됐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이렇게 여성혐오,남성혐오가 극에 치닫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우리나라가 누구에게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청소년,대학생,직장인 남자들은 모두 이삼십 대 여성을 첫 번째로 꼽은 반면 여성들은 육칠십 대 남성,사오십 대 남성,십 대 남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남자들은 여자들이,여자들은 남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남자 청소년들은 지나친 여성 위주의 정책으로 남자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왜 이렇게 모든 세대 남성들의 마음에 여성혐오가 싹튼 것일까?이 조사를 실시한 연구원이 제시한 원인 중 하나는 ‘남성으로서의 성 역할’에 대한 스트레스였다.우리나라 남자들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여자보다 잘나야 하고 가족을 열심히 부양해야 하고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고 그러다 보니 여성을 탓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이상 김고연주의 ‘나의 첫 젠더 수업’에서 인용) “남성이 여성에 대해 경멸과 반감을 지니는 것은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그러한 성질을 요구하고 그런 태도를 보여야만 남자다운 남자로 간주하기 때문”(벨 훅스)이다.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고유한 개성과 재능을 지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때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좀 더 성숙한 인격체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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