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 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 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전이 끝난 뒤 보인 김아랑 선수의 환한 미소는 아직도 기억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명장면이다.경쟁자였던 최민정의 우승을 축하하는 언니의 격려는 경기장의 관중과 국내외 팬들에게 올림픽 정신을 웅변하는 한 컷으로 남겨졌다.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동료의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은 스포츠맨십의 정수를 보여줬다.강릉 아이스아레나를 감동의 공간으로 만든 또 하나의 장면은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연출됐다.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이상화와 그녀의 라이벌인 세계 최고기록 보유자 고다이라의 대결로 눈길을 끌었다.이상화가 100m 구간을 빠르게 통과하며 기대감을 모았지만 올림픽 신기록을 쓴 고다이라에 이어 결국 은메달을 거머쥐게 됐다.이상화는 경기를 마치자 눈물을 쏟았다.고다이라가 태극기를 들고 라이벌 이상화를 안고 위로했다.이 모습은 국내외 매체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김아랑과 고다이라가 경기장에서 만든 그림들은 올림픽이 경기 자체의 감동을 뛰어넘는 지구촌 우정의 축제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큰 게임을 앞두고 있다.석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는 올림픽만큼 열기가 뜨겁다.선거 캠프가 속속 꾸려지고 필승 전략이 세워지는가 하면,유권자에게 어필할 지역 발전공약과 세대별 맞춤형 공약도 선보인다.선거사무실 외벽엔 후보자의 거대한 인물사진이 등장했다.선거축제가 시작된 것이다.그리고 그 치열함은 군수 선거가 가장 뜨겁다고 할 수 있다.인구 20만~30만 명 규모의 자치단체장을 뽑는 시장 선거에 비해 인구 수 만 명에 불과한 군수 선거는 주민들의 체감지수가 훨씬 높다.전통시장에서 또는 마을길에서도 쉽게 만나 인사하는,얼굴도 알고 성격도 아는 그런 후보자를 선택해야 하는 게임이다.경쟁자들끼리도 너무 익숙한 관계다.운동원들도 마찬가지다.서로 형 동생하며 자란 비슷한 연배들일 수 있다.이 같은 상황을 잘 아는 주민들 입장에선 걱정이 앞선다.분명 후보자의 잘잘못을 따지고,품행을 지적하는 불편한 일들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경쟁이 과열돼 인심이 사나워지고 서로 반목하는 사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더구나 ‘내편 네편’ 하며 주민들끼리 갈라진다면 도대체 선거는 왜 해야 하냐는 비관론도 들린다.여기에 도의원,군의원 선거까지 맞물려 온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갈려 서로 상처받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지방 자치의 꽃이라 불리는 자지단체장 선거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소중한 제도다.험난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쟁취한 값진 결과물이기도 하다.그러나 이 귀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치지 않고 활짝 꽃 피게 하는 것은 후보자와 지역 주민의 몫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인내와 예의가 필요하다.후보자 사생활에 대한 관심보다는,정책의 깊이와 철학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터무니 없는 비난과 흑색선전이 없는지,현실성 없는 장밋빛 공약으로 마음을 잡으려는 후보는 없는지 꼼꼼히 읽어야 할 때다.그래서 서로의 관계를 해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탐스런 열매를 영글게 해야 한다.

혹자는 우리의 정치와 선거에 스포츠정신을 벤치마킹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양보 없이 치열하게 경기를 펼치지만 정정당당히 룰을 따르면서 진정한 승부를 가르는 것이 아름답지 않냐고….그래서 감아랑과 고다이라의 미소와 포옹을 선거판에서도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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