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와 산수유,매화꽃이 꽃 색을 잃었다.양지바른 언덕에 피어난 제비꽃도 마찬가지.보랏빛 꽃잎에 듬성듬성 얼룩이 번진다.버짐먹은 모습.어디 제비꽃뿐인가.봄볕을 받은 모든 꽃잎에 죽은 깨가 박혀있다.미세먼지의 저주!온갖 식물이 미세먼지와 사투를 벌인다.이 전쟁,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100㎍(마이크로그램)을 수시로 넘나든다.4~5월엔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기상청의 전망.이러다간 목련과 진달래 철쭉마저 제 꽃 색을 잃을 것 같다.

미세먼지는 인체에 치명적이다.입자가 워낙 작아 몸 안에 들어오면 체외 배출이 어렵다.이런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는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을 암 유발 물질로 분류,경각심을 높인다.미세먼지와 석면,크롬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예방책이 나오고 있지만 ‘미세먼지 공포’를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다.폐 점막 보호를 위해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당근,토마토,호박,시금치,피망 등 녹황색 채소를 권장하지만 서민들이 습관화하기엔 쉽지 않다.

모든 일상이 미세먼지의 영향권에 놓이면서 관련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진다.1회용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공기청정기는 필수품이 됐다.옷의 먼지와 세균을 제거해 주는 의류 스타일러와 의류건조기는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한다.미세먼지를 줄이거나 차단하는 실내 인테리어도 인기.식물로 집안을 꾸미는 ‘플랜테리어’가 대세로 자리 잡으며 틸란드시아와 산세베리아,스투키,인도고무나무가 날개 돋힌 듯 팔린다.밀폐된 유리그릇이나 유리병 안에 작은 식물을 키우는 ‘테라리엄’도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진다.

햇볕이 차단될 정도로 미세먼지가 극심하지만 정부대책은 늘 헛발질.‘중국탓’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다 2년 전엔 ‘고등어구이 미세먼지’ 발표로 비웃음을 샀다.이젠 ‘마스크가 아니라 방독면을 써야 할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대책다운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2022년까지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고 호언한 대통령의 약속도 오리무중.상황이 악화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미세먼지 휴교령’을 꺼내 들었다.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휴교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다.그러나 이게 대책일까?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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