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민주적 권리향상과 국민적 단결을 양립시킬 수 있게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며 지방민의 자치역량과 이익을 개발하고 관권의 부패를 자체적으로 시정케 한다” 197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상계에서 피력한 지방자치제에 대한 주장이다.이 주장은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0년 지방자치제 실시를 주장하며 단식투쟁에 나섰던 그의 메시지에도 담기게 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다음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국민은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을 만들어냈다.여소야대 국회는 5공 청산과 함께 본격적인 지방자치제 실시를 추진하게 된다.야당은 1989년 벽두부터 지방자치제 관련법안을 통과시켰다.이에 노태우 정부는 거부권을 행사했다.야권은 10월 정기국회에서 지자제법을 다시 추진하는 등 여권을 압박했다.결국 여야는 정기국회 폐회일 극적으로 관련 법률안이 통과시키고 마침내 공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90년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거대 여당을 탄생시킨다.거대 여당은 지방자치제 실시와 관련한 모든 합의를 파기했다.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투쟁을 벌인 것이다.1997년 대선에서 패배한 그는 금권선거도 문제지만,더 심각한 것은 지방행정기관에 의한 관권선거를 막지 못하면 앞으로도 여야간 정권교체는 난망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는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됐고,1995년에는 기초 및 광역단체장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등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행됐다.지방권력을 주민이 직접 선택하게 됨으로써 1997년 대선에서는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훗날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 도지사나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주민들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보다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에 돈과 권력이 집중된 반쪽짜리 지방자치제 시대를 살고 있다.최근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두고 여야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지만,진정한 의미의 분권은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얼마나 지방과 나누어 시민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달려있다.‘중앙분권 개헌’이 어려우면 ‘지방분권 개헌’이라도 먼저 추진해야 한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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