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산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마주하는 모든 게 경이로운 세상.생강나무와 화살나무,원추리,달래의 꽃과 새순은 그 자체가 봄이다.모진 추위를 이기고 싹을 틔운 잔대,둥굴레,도라지,삽주의 질긴 생명력.스스로의 약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싱싱하고 푸르다.생명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살아있음!그렇게 ‘늘어진 봄’을 만끽하다보면 일상의 모든 시름이 훌훌 사라진다.내가 꽃이고 바람이며 하늘이다.무위자연(無爲自然),오유지족(吾唯知足)의 세계.

숲에 있다 보면 시간을 잊는다.봄날의 숲은 더욱 그렇다.양지바른 언덕에 떼를 지어 자란 두릅나무 군락을 상상해 보라.초록을 밀어 올려 일제히 왕관을 쓴 위엄.모시대 싹의 쌉싸래한 진액과 는쟁이냉이(산갓)의 매운 향기가 어우러져 침샘을 자극한다.그 곳에선 모든 것이 자유롭다.간섭하지 않는다.그 무엇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스쳐가는 바람조차 조심스럽다.우주의 한 가운데 나 홀로 머문 듯 적막하기까지 하다.

tvN ‘숲속의 작은집’을 봤다.놀라웠다.아파트 거실에 오두막을 지은 느낌.배우 소지섭과 박신혜가 각자의 작은 둥지에서 꼬물거린다.책을 읽고,음악을 듣고,빈둥거렸다.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멍 때렸다’이다.그들은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느릿느릿 살았다.아니,‘살아지고 있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그 공간엔 휴대전화가 없다.가스와 전기,난방기구도 없었다.스스로 고립돼 자유를 만끽한다.5060 남자들을 TV속으로 끌어들인 ‘나는 자연인이다’의 새로운 버전이다.

자연을 찾아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결같다.“혼자 있고 싶다”,“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다”,“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 삶을 누리고 싶다”고.‘숲속의 작은집’에서 느린 삶을 경험한 소지섭도 “할 게 없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머리를 비우고 우두커니 멍하게 살기!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무위자연의 삶이다.노자는 말한다.“도를 닦는 것은 날로 덜어 내는 것이다.덜고 또 덜어서 무위에 이르면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못하는 것이 없다((爲道日損(위도일손),損之又損(손지우손) 以至於無爲(이지어무위),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고.봄 숲에서 가져 본 단상이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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