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교수
▲ 송현주 한림대 교수
지난 주 검찰은 강원랜드 부정채용 청탁 혐의로 염동열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다시 법원의 요청을 받아 국회에 체포동의서까지 발송했다.어찌 보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첫걸음에 불과하기도 하고 지금 단계에서 유무죄를 예단해서도 안 되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지역의 국회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폐쇄적인 정치 문화를 되돌아 볼 필요는 있다.

사실 세상만사가 대체로 교환이고 거래인 것처럼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정치인이 공직에 선출될 경우 자신을 지지해 준 개인 혹은 집단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다.지지자들의 입장에서도 보상이라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그런데 정당과 정치인은 어떻게 보답할 것이며,지지자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물론 가장 올바른 방법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다.하지만 민주주의와 그를 뒷받침하는 관료제가 성숙하지 못한 조건에서는 정당과 정치인이 공적 자원,주로 공직을 인센티브로 지지자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는 정치적 후견주의(clientelism)가 편리하면서도 유효한 방식이 되기도 한다.후견인(patron)과 고객(client)이라는 전근대적이면서도 위계적인 관계를 맺고 지지자는 추종하고 정당과 정치인은 자리를 마련해 주는 방식으로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후견주의와 책임 정치는 다르다.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 철학과 이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지지자들이 그 인재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지휘하는 고위 공직자를 정무직으로 두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반면 후견주의는 공직을 정치적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앞서 논공행상을 위한 전리품으로 본다.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공무원보다 감시가 다소 허술해 보이는 공기업의 자리는 좋은 전리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많을수록 좋고 필요할 경우 더 만들어 내기도 한다.진보-보수를 떠나 후견주의 정치문화가 온존해 있는 남유럽 국가들이 비대해진 공공부문,실제로는 공공이라는 미명하에 공고화된 사적 이익들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보다는 후견인-고객,정치인-지지자 간의 책임이 더 우선인 후견주의 정치문화가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점은 두말 할 것도 없다.많은 비교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후견주의 정치문화가 국가 간,지역 간 격차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동시에 저발전 상태는 후견주의 정치문화의 토양이기도 하다.일종의 악순환이다.

선거는 후견주의 정치문화의 실체를 가늠해 보고 또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정당과 후보,선거운동원들은 정치적 이상과 목표를 함께 나누고 있는지,아니면 후견인과 고객의 관계일 뿐인지,나는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하고 투표하는지,혹시 나도 후견인을 필요로 하는 고객은 아닌지.최근 한 외국 드라마에서 남미 마약 카르텔의 조직원이 두목을 빠뜨론(patron)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빠뜨론이 아니라 공직자를 선출해야 한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