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중범 도장애인종합 복지관장
▲ 최중범 도장애인종합 복지관장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지난 1989년 강원도장애인종합복지관 개관 후,거짓말처럼 시간이 흘러 어느덧 3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복지관을 찾았고,함께 웃고 울며 역사를 만들어왔다.영원히 어린아이일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장애아동들이 복지관을 통해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하기도 하고,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이들도 있다.긴 시간동안 복지관도 변하고 나도,세상도 변했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독히도 변화가 더딘 것이 있다.바로 세상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이다.

진정한 인간다움,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체로 그러하듯이 나도 그러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아닐까 싶다.예를 들어 남들이 그러하듯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고,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삶 말이다.하지만 현실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보편적 믿음을 가질 수 없도록 방치하고 있다.엘리베이터 없이 계단만 있는 건물이 즐비한 세상에서 직장 회식 때마다 겪는 휠체어 이용 직원의 소외감과 좌절감,그리고 동료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부채감 등 스스로를 보통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상황들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다움이 훼손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대체로 사람들은 인권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을 당연하게 이해하고 있다.하지만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하지만,한편으로는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나 ‘저 사람들도 저렇게 사는데 난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위안’을 무의식 중에 느끼고 있을 공산이 크다.그렇지 않고서야 시외버스의 저상버스 보급률 0%를 수십 년간 방치 해 올 수 있었을까? 어차피 남의 일이라는 생각,일명 ‘타자화’라고 하는 개념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팽배해 있다.이것은 사회적 분열의 단초가 될 수 있으며,특히 장애인에게 ‘타자화’는 단순한 분열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삶을 위협할 수 도 있다.

38번째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의 생일날’이라고 표현한 과거 모 정치인의 발언에서 보여지듯,대부분의 차별이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며 장애에 대한 타자화가 만연하는 한,장애 차별적 환경 개선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이제는 장애인에 대해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휠체어,유모차가 건널 수 없는 횡단보도,엘리베이터가 없는 투표소,생각없이 내뱉는 장애비하 용어로 정서적 학대를 받고 있는 수많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공감 하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공감이다.‘타자화’가 아닌 ‘공감’이 확산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네가 그러하듯 나도 그럴 수 있다.’라는 확신,장애인에게 허락되지 않던 일상들이 모두의 공감 속에서 동등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현실로 나타난다면 더 이상 장애,인종,성 등 각자의 조건들로 인한 차별은 분명 사라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경사로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보급하는 현실적 문제점에 대한 해결도 분명 시급하지만,문제의 근본을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인식의 문제도 함께 개선이 되어야 한다.그리고 인식의 문제는 ‘교육’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욱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인간을 인간답게 바라보는 인간적 시선을 갖추어야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그리고 그런 날이 언젠가는 도래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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