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꿈’은 두 가지의 의미로 받아 들여진다.하나는 부질없는 기대.현실적 가능성이 낮음에도 집착하거나 탐닉해 버리는 욕망,백일몽이나 일장춘몽 등에서 흔히 떠올려지는 상황이다.다른 하나는 개연성을 가진 희망이다.맥락과 상황에 미뤄 개연성이 존재하는 꿈은 그래서 우리를 들뜨게 한다.그동안 한반도의 ‘평화’는 일시적인 설렘을 넘어 항상 일장춘몽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그러나 며칠 앞으로 다가온 2018 남북정상회담은 그 범주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능하게 한다.꿈이 전개되는 전후관계가 과거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수개월간 우리는 2017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남북관계의 진전을 지켜봐 왔다.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평창올림픽에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혔을 당시 의례적인 평화공세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그런데 그 이후의 과정은 상상을 뛰어 넘으며 진행돼 왔다.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남북의 대화통로 재개,문화예술 교류와 특사 교환으로 이어졌으며 은둔과 비밀의 대명사로 불리던 평양은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해 보여주고 있다.여러차례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20일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핵·경제 병진정책’ 대신 경제발전에 몰입하겠다는 정책방향이 발표됐다.김정은 위원장은 이 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방침도 천명했다.

남북대화 의제도 과거의 틀을 뛰어 넘는 것이다.그동안 북한은 교류·협력은 남북관계를 통해,비핵화는 북·미협상을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고집해왔다.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의제가 핵심적인 논의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록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개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가 우리 땅을 방문한다는 의미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부분이다.기존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모두 평양에서 개최됐다는 사실,그리고 북한이 답방요청을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단을 상징하는 비무장지대 한 가운데에서 북한 정상이 한국 땅을 밝는다는 것 자체가 분단과 냉전체제의 종결을 향한 또 하나의 기념비적 사건이기 때문이다.이런 분위기가 잘 관리된다면 평창 평화올림픽이 한 겨울에 틔운 희망의 싹이 봄의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화려한 꽃으로 만개하고 가을에 풍성한 결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하다.

물론 희망 일변도의 사고로만 상황을 볼 수 없는 부분도 있다.북한의 ‘비핵화’와 우리의 ‘비핵화’는 의미상 차이가 있다.우리의 비핵화가 북한의 완전하고도 포괄적인 핵·미사일 포기라면 북한은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한·미의 비핵화,즉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 축소와 한·미 동맹의 이완을 주장해 왔다.즉 북한의 비핵화는 미·북 간의 ‘핵군축 회담’이며 이는 이미 ‘핵 보유국’이 된 북한을 인정하라는 의미다.또 북한이 주장하는 ‘체제안전’은 외부에서만 약속하고 보장한다고 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평화체제와 북·미 관계 정상화가 가시화된다고 해도 국경 너머의 적과 위협을 강조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북한의 정치체제 개혁이 선행되어야 진정한 체제 안전이 가능하다.평화체제의 수립 형식과 당사자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꿈’이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요인에 대해서는 가치를 부여하되 거기에 내재된 위험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인내심과 자기 페이스의 유지가 필요하다.북한의 변화는 2017년이후 정부가 국제적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일관되게 대화와 협력을 함께 강조해 온 유연한 자세로부터 비롯됐다.이 중심이 유지되어야 ‘한반도 운전석론’ 역시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자산이 된다.‘꿈’의 시작은 기분 좋게 출발하고 있다.이제 이 ‘꿈’이 강원도와 한국을 넘어 한반도,나아가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향해 뻗어 나가는 그 희망을 향해 다시 한 번 각오를 되새겨야 할 때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