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때 사림(士林)의 지지를 받았던 조광조의 개혁정치는 좌절된다.중종반정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그의 개혁정책은 결국 공신들의 반발을 사는 바람에 좌초되고 만 것이다.조광조를 조정에서 끌어내리고 역모의 죄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계기는 나뭇가지 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새겨진 네 글자 때문이었다.‘주초(走肖)’의 두 글자를 붙이면 ‘조(趙)’가 되니,조씨 즉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나뭇잎에 ‘走肖爲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질 수 있었을까.기록에는 대궐 후원에 있는 나뭇가지 잎에 꿀로 이 글자를 써서 벌레가 그것을 파먹게 한 다음,자연적으로 생긴 것처럼 꾸며 궁인으로 하여금 왕에게 고하도록 했다고 전해진다.나뭇잎 조작을 통해 조광조를 비롯한 70여 명의 사림이 죽임을 당했는데,역사는 이 사건을 ‘기묘사화(己卯士禍)’라고 기록하고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정부를 구성하고 그 권한을 행사할 수가 있다.국민여론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그래서 정치권력을 가진 엘리트 집단은 대중을 조종하여 정치적·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려는 사회통제양식인 대중조작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정치권력을 유지하거나 반대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동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는 이를 관철하고 강화시켜주는 중요한 수단이다.그동안의 주요 대중매체는 신문과 방송이었다.정치세력들은 이들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설득에 나섰다.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위해 대중조작까지 시도해 왔다.모바일 등 일상적으로 인터넷 공간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요즘에는 대중여론 조성 혹은 대중조작에 필요한 매체의 변화를 몰고 왔다.특히 인터넷 공간은 정보검색과 취미활동,상품구매 등 경제활동을 넘어 이제는 민주주의 신장과 관련해 정치적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는 확장되는 인터넷 공간이 여론조작에 쉽게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2012년 18대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국가기관에 의한 댓글조작사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그리고 이번에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 불거졌다.대중조작 매체가 나뭇잎에서 인터넷 공간으로 진화한 것인가.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