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매거진 OFF] 속초 아바이마을
실향민 1세대 60∼70명 불과해
아사모 결성 마을 참모습 홍보 활동
청호동 곳곳 옛 판잣집 흔적 그대로
1·4후퇴 때 남하한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휴전 이후 북과 가까운 속초의 바닷가에 움막형태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촌락에는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노인들이 많아 그 곳 사투리인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바이마을의 실향민 1세대는 60~70여명에 불과하다.지금은 실향민 2∼3세들이 중심이 돼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이들은 1세대 대부분이 떠나고 얼마 남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아바이마을의 자긍심과 풋풋한 삶의 모습,소중한 삶의 역사를 지켜가고 있다.특히 실향민 2∼3세대들은 아사모(아바이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마을의 참모습을 널리 알리고 아바이마을 주민들의 화합과 소득증대를 위한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호동 아바이마을 골목길에서는 우리의 아픈 역사는 물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아버지 어머니의 자식사랑과 강인한 삶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현재는 신수로 및 구수로 공사 등으로 옛 청호동의 가옥형태와 골목길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골목길 드문 드문 옛집 그대로 간직한 집들이 있다.과거 아바이마을은 실향민들이 임시 거처로 나무 판자를 이어 얼기 설기 지은 판잣집이 모인 판자촌이었다.당시 판잣집은 성인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길을 마주보고 모여 있었다.그런 좁고 작은 판잣집의 귀퉁이에는 어김없이 화분이 놓여 있다.통조림 깡통이나 수산물을 담았던 나무상자에 흙과 연탄을 다져 넣은 화분에 고추며 화초들을 집집마다 심어 놓았다.통일을 기다리며 귀향의 꿈을 품고 살아가던 주민들의 희망의 상징이었다.
박주석 jooseok@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