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평화의 매개가 될 수 있을까?‘밥이 곧 평화’라면….요즘,북한 음식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금강산을 처음 찾은 지난 2006년 가을,나를 매료시킨 건 금강산의 풍광이 아니라 음식이었다.북한 현지 안내원과 술잔을 주고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마주한 얼레지된장국.나름 약초와 산나물에 조예가 깊다고 자부하던 나도 적잖이 놀랐다.새봄에 자란 얼레지를 말렸다가 된장에 버무려 끓인 얼레지된장국의 그 부드러운 맛이란.특별했다.그 감동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2년뒤 개성을 찾았을 때 입맛을 돋운 건 냉면이었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육수.금강산에서 먹은 육수맛과 사뭇 달랐다.소고기,닭고기,돼지고기에 꿩고기를 더해 우려냈다는데 남한에서 경험하지 못한 맛이었다.맑고 개운하면서도 묵직했던 느낌.식당종업원은 내게 “계란지단과 고기 편육,양배추 김치를 함께 버무리지 말고 각각의 식재료를 따로 맛보시라”며 식초는 젓가락으로 면을 집을 때마다 떨어뜨려야 한다고 조언했다.그 냉면이 평양냉면이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 오를 음식이 화제다.청와대가 공개한 메뉴는 뛰어난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한번 쯤 맛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아낸다.평양 옥류관 냉면과 민어해삼편수,문어냉채,한우 숯불구이,달고기구이,도미·메기찜,스위스식 감자전인 뢰스티 등.청와대는 각각의 음식과 사연도 소개했다.민어해삼편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특산물이며 달고기 구이는 문 대통령이 자란 부산의 대표 음식이라는 것.뢰스티는 김정은이 유학했던 스위스 음식이다.

만찬 음식에 대해 청와대는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의 뜻을 담아 준비했다”고 설명한다.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대통령과 두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노무현 전 대통령,소떼를 몰고 방북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윤이상 작곡가가 그들이다.신영복 교수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봄이 제일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는 꽃뜰이 아니라 바람부는 들판”이라고.이름 없는 잡초에서부터 봄은 시작된다고.정상회담 만찬에 오를 음식도 처음엔 소박했을 것이다.그러나 이젠 평화의 씨앗을 품은 음식으로 대접받는다.아무쪼록 한민족 모두를 위한 평화의 밥상이 되길.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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