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대표팀은 2010년 아시안게임서 한국이 30점 차 대승

▲ 북한 여자 대표팀. 17번이 박진아.오른쪽이 로숙영. [FIBA 홈페이지 사진 캡처]
▲ 북한 여자 대표팀. 17번이 박진아.오른쪽이 로숙영. [FIBA 홈페이지 사진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체육 교류 시작을 농구부터 하자고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 농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은 이미 올해 8월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은 물론 남북 농구 정기 교류 재개와 국내에서 개최하는 아시아 퍼시픽 대학 챌린지 대회에 북한 팀 초청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 회장은 "1930년대부터 농구도 북한과 교류를 해왔다"며 "1946년을 끝으로 경평농구가 끝났지만 1999년과 2003년 남북통일 농구가 재개됐다"고 남북 농구 교류의 역사를 소개했다.

1999년 9월 우리나라 현대 남녀 농구팀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통일 농구 경기를 벌였으며 남자부에서 현대가 북한 벼락 팀에 71-102로 졌고, 여자 역시 현대가 북한 회오리 팀에 93-95로 패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북한 팀이 서울을 찾아 경기를 치렀는데 이때는 여자부에서 현대가 회오리 팀을 86-84로 이겨 9월 평양 경기 패배를 설욕했으나 남자팀은 북한 우뢰 팀이 현대를 86-71로 제압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세계 최장신인 리명훈 선수가 있을 때만 해도 우리가 강했는데, 리 선수가 은퇴한 뒤 약해졌다"고 말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남북통일 농구 전적이 있었던 셈이다.

키 235㎝인 리명훈은 당시 서울 경기에서도 혼자 28점, 20리바운드로 골밑을 장악했고, '북한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박천종은 31점을 쏟아부었다.

2003년 10월에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통일 농구에서도 북한은 남자부에서 86-57로 크게 이겼다. 이때도 리명훈이 16점을 넣었고, 박천종은 3점슛 6개로 33점을 쓸어담았다.

여자부 경기는 접전 끝에 한국 선발이 88-84로 승리했다.

▲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리명훈(오른쪽)과 한국 서장훈.
▲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리명훈(오른쪽)과 한국 서장훈.

그러나 최근 북한의 농구 기량은 이때보다 많이 후퇴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남자농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공식 대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리명훈이 뛰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5∼6위전에서 일본을 꺾고 5위에 올랐을 정도로 수준급 전력이었으나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과 맞붙어 66-96으로 크게 졌다.

당시 한국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단신의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공수에 짜임새가 있다"며 "우리 선수들이 많이 얻어맞았는데 그런 거친 스타일은 어떻게 보면 키가 작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해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 출전해 비교적 최근까지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북한은 당시 6전 전패를 당해 8위에 머물기는 했지만 아시아권에서 '복병'으로 꼽히는 대만을 상대로 76-77, 1점 차 분패를 당하는 등 만만치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특히 키 181㎝ 단신 센터 로숙영은 평균 20.2점을 넣어 대회 득점 1위를 차지했다.

또 올해 15살인 박진아는 키 200㎝로 앞으로 발전 속도에 따라 '대형 선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방 회장은 "북한 농구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몇 명 정도는 단일팀 전력에 보탬이 될 선수들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고, 허재 남자 대표팀 감독 역시 "단일팀 구성을 위해서는 북한 선수들의 수준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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