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배 동해주재 취재부국장
▲ 홍성배 동해주재 취재부국장
마을을 지나는 신작로가 있었다.마을의 중심 도로지만 흙과 자갈로 만들어진 신작로는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먼지가 뿌옇게 날아 올랐다.어쩌다 버스가 지나면 먼지는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 길 옆을 지날 때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감은 채 한참동안 등을 돌려 숨을 참고 먼지가 사라지길 기다려야 했다.연거푸 차가 지나갈 때면 숨은 턱에 차 올랐다.그럴 때면 지나간 버스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도로변의 배추 밭은 늘 흙먼지를 뒤집어써 상품가치를 잃었고 농작물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1980년대까지 우리네 마을 대부분은 이런 광경이었다.먼지를 뒤집어쓴 것이 일상이었던 탓에 요즘 기상예보에 미세먼지에 대한 알림을 보면 생경하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먼지를 먹으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곳이 있다.동해시의 송정동 주민들은 최근 정부에 동해항 배후단지를 지정하고 주변지역을 집단 이주 시켜달라는 청원서를 냈다.동해항으로 인해 분진과 소음 등에 시달려 마을이 황폐해져 더이상 살 수 없다는것이 그 이유다.송정동은 1979년 동해항이 개항하기 이전에는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여름철에는 해수욕객들로 붐볐던 곳이다.하지만 국가정책 상 동해항을 개발하면서 마을주민들은 심각한 환경문제를 떠안고 살아가야 했다.당시 항은 소위 ‘굴입식’으로 육지를 파 바닷물이 들어오게 만들었다.이곳에서는 현재 시멘트와 석탄,유류 등 물류 수송이 이루어져 대형 덤프트럭들이 하루 3000회 이상 다니고 있다.항만 부두에 벌크화물이 하역 되고 노상 야적돼 비산먼지가 심각하다.화물 차량이 오가면서 먼지와 매연은 주민들을 고통의 일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 2015년 동해항 주변 지역을 환경성 질환의 발생 또는 환경 유해인자로 인한 건강피해가 우려된다며 주민건강 영향조사를 실시했다.조사결과 대기중의 미세먼지와 휘발성 유기화합물,망간 농도가 높게 나왔다.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도시 슬럼화로 인구는 동해항 개항 직전 1만2700여명에 이르던 것이 현재는 4600여명 정도고 주민 대부분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다.심각한 것은 동해항 3단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오는 2021년 동해항이 준공될 경우 물동량이 급증,사태는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최근 해양수산부의 회신은 한마디로 비용이 많이 들어 배후단지 조성과 집단 이주는 불가하다는 것이다.주민들은 정부의 예산 타령에 허탈해 하고 있다.서울시민이 이렇게 산다고 하면 예산 탓을 하겠느냐는 것이다.항만은 지역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나 환경이 뒷받침돼 주지 못하니 그사이에 낀 주민들만 수십년 째 골탕먹고 있다.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항만 주변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에 배후단지를 갖춰가는 근본적인 치유를 추진해야 한다.

신작로에 먼지가 날린다고 물을 뿌려 댈 것이 아니라 도로를 포장해야 도로변의 배추들이 시들해지지 않는다.그래야 주민들도 되돌아오는 버스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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