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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이주 여성들에게도 ‘미투’를 허하라

이선엽 2018년 05월 09일 수요일
▲ 이선엽 춘천 YWCA 사무총장
▲ 이선엽 춘천 YWCA 사무총장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특히 이주여성들은 공장,가정,학교 등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외부기관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다.또한 성폭력 피해에 대처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무엇보다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언어의 부담 없이 자국어로 소통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통합 지원 기관의 설립과 경찰·검찰·법원의 사법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우리나라의 출입국 정책에 따르면 이주여성은 너무도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다.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매번 자신의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한국인 남편이 함께 출입국관리소에 동행해야 한다.두 사람이 진정한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진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부 기관이 심사한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심사를 처음 혼인신고 이후에도 매년 반복해야 한다.이주여성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해도 ‘신고하면 출입국관리소에 같이 안 가준다’는 말 한마디에 수년 동안 피해를 참고 지낼 수밖에 없다.

일터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지금의 제도 안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사장이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외국인 노동자는 사장이 싫어도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사장의 허락 없이 사업장에서 이탈하면 그 순간 ‘불법체류자’가 된다.사장이 가진 권한은 막강하지만,책임은 거의 없다.제대로 된 잠금장치도 없는 낡은 비닐하우스가 이주여성 노동자의 숙소이며,그마저 사장은 여성 노동자의 숙소를 제멋대로 들락날락한다.이런 숙소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매달 수 십 만원씩 제한다.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니 할 말이 없다.이런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사장의 온갖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이주여성을 열악한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지속되고 은폐된다.그동안 감춰졌던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드러나는 지금,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어느 곳에서 눈물 흘리는 피부색 다른 이주여성들에게도 울림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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