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매거진 OFF] 원주 강원감영
조선시대 출세 대명사 ‘팔도 감사’
태조4년 강원도 감영 원주목 설치
포정루·선화당·청운당 등 30여 동
세종 5년 황희 정승 강원관찰사 임명
선조 13년 송강 정철 관동별곡 탄생

조선시대 팔도감영 중 하나인 강원감영.감영은 감사(監司)가 근무하는 영문(營門,관청)이다.감사는 종2품으로 관찰사라고도 부른다.오늘날의 도지사와 같다.강원감영은 최근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됐다.조선시대 500년 역사를 간직한 강원감영으로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 야간조명이 설치된 복원된 강원감영 모습.


조선은 전국을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황해·함경·평안 8도로 나누고 각 도에 감영을 두었다.경기도는 서대문 밖,충청도는 충주(선조때 공주로 옮김),전라도는 전주,경상도 상주(선조때 대구로 옮김),강원도 원주,황해도 해주,함경도 함흥(선조때 영흥으로 옮김),평안도는 평양에 있었다.이들 감영의 감사를 팔도감사라고 해서 출세의 대명사로 여겼다.원주는 남한강과 섬강을 경계로 경기도와 충청도가 접하고 있으며 강원도 내륙과 강릉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통일신라시대는 9주5소경의 하나인 북원경이 설치됐고 고려 때는 원주목이 됐다.

조선은 태조4년(1395)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강원도 감영을 원주목에 설치했다.강원도란 명칭은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이후 갑오개혁으로 지방제도가 개편되면서 춘천으로 도청소재지가 이전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 원주 문화재 야행 행사에서 진행된 전통의상 패션쇼.

30여 동에 이르건 건물들 중 감영의 정문이 되는 포정루와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정청인 선화당,부속 건물인 청운당이 남아 있고 연못터인 방지의 석축도 볼 수 있다.복원된 외삼문과 내삼문에 이르는 보도와 내삼문에서 선화당으로 이르는 보도 역시 시간의 깊이를 더듬어가는 안내자가 된다.감영의 중심인 선화당은 정면 7칸,측면 4칸에 대청마루와 관찰사의 휴식 공간이 함께 있는 겹집의 형태다.감영으로서 위엄과 격조가 느껴지는 대청마루에 올라 강원마당을 바라보며 500년 역사와 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과거 이곳은 대관령 고갯길을 따라 동해바다의 수산물이 모이고 평창,횡성,정선에서 난 곡식이며 백두대간에서 난 귀한 약초들이 감영의 창고에 모여들었다.청백리 황희 정승이 세종 5년(1423)에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선화당에 머물렀고 선조 13년(1580)에 관찰사로 임명된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은 자신의 임지인 강원도를 둘러보고 그 유명한 관동별곡을 지었다. 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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