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스님 한국불교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장

▲ 정선스님 한국불교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장
▲ 정선스님 한국불교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장
신록이 우거진 5월의 훈풍이 살갗을 싱그럽게 스쳐주는 아침이다.매년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지만,올해는 의미가 남다르다.아침 예불을 드리고 녹차 한잔을 하면서 조용히 이것저것을 생각해 본다.이제는 습관처럼 된 나의 일상이다.하루를 시작하기 전 일정을 마음속으로 챙겨본다.

출가사문에게 무슨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너무나 번거로운 일이다.그래서 옛날 큰스님들은 말씀하시길,‘중 벼슬은 닭 벼슬보다 못하다’라고 경책하셨다.수행자에게 무슨 감투가 필요하겠는가.그렇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절이나 출가 스님들도 가만히 앉아서 독경이나 하고 염불이나 하는 정도로는 출가자의 역할을 다할 수가 없다.주지하기도 바쁜데,종무원장,사암연합회장이란 감투까지 쓰고 보니,잠시도 쉴 틈이 없다.게다가 서울 총무원 직책까지 맡고 보니,그야말로 정신없다.다 내려놓고 본분으로 돌아가는 날이 행복하겠지만,이것도 나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는 불기2562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불기(佛紀)란 부처님 열반을 기점으로 하는 불멸기원(佛滅紀元)을 말한다.그러므로 부처님은 2642년 전에 탄생하셨다.부처님 탄생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 말로,‘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말을 알고 있다.한문식 표현에 따르면 오해의 소지가 많다.풀어서 말해본다면,‘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 선언이다.요즘말로 한다면 ‘인간주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싯다르타 고오타마의 ‘인권선언’은 인간만이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사생(四生·태란습화)의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주권선언’이다.한마디로 생명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강조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것을 해석학적으로 주석을 달고 싶다.

불교에서는 ‘일조무우(一朝無憂)’란 말을 즐겨 쓴다.나도 못 그리는 달마도이지만,달마도를 그리고 나서는 화제(畵題)로 ‘일조무우’라고 써 놓으면,받는 분들은 무슨 의미인가 하고 의아해한다.하지만 이 말처럼 의미가 깊고 큰 말이 또 어디 있으랴!‘일조무우’란 ‘하루아침에 근심이 없다’란 뜻인데,이 말은 부처님을 두고 한 말이다.부처님은 다 버리고 설산 고행의 길을 나섰는데,그것은 근심을 없애려고 출가하신 것이다.근심이란 무엇인가.석가의 근심은 ‘큰 근심’이었다.인생과 우주의 근본을 알고 싶었고,인간은 왜 고뇌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의 ‘고(苦)’의 원인을 뿌리째 뽑고 싶어서 6년간이나 자신의 내면과의 싸움을 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견명성오도(見明星悟道)를 함으로써,하루아침에 근심을 털어버리고 각자(覺者)가 되어서 붇다(Buddha·깨달은 자)가 되었다.석가모니 부처님이 된 것이다.석가 족 출신의 깨달은 자가 되어서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석가탄신일이기 때문에 부처님오신 날을 봉축한다는 의미보다는 깨달은 분이기에 봉축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해야 한다.그러므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것은 ‘주권선언’과 ‘일조무우’의 의미가 합쳐져서 인류에게 무명업장으로부터의 해탈자유를 얻을 수 있는 진리를 교시(敎示)하셨기에 ‘대 스승’으로서 공경하고 탄신을 축하하는 것이다.모든 분들에게 부처님의 자비광명과 가피가 두루 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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