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묵호 옛 영화,네갈래 비탈길 벽화가 되다
동해안 어촌의 변신, 현장을 가다
묵호항 오징어 명태 넘쳐나던 과거
사람·돈 넘쳐나던 호황기 저물어
2010년 벽화부터 시작된 재생사업
한해 50만명 찾는 관광명소 재탄생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사업 추진 등
주민참여로 정체성 갖춘 장소 거듭

▲ 논골담길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묵호항과 동해 해안선.  그림/한규빛
▲ 논골담길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묵호항과 동해 해안선. 그림/한규빛
# 프롤로그


바닷가 길이가 무려 401.9㎞에 달하는 강원도 동해안에는 64개 항·포구,어촌마을이 존재한다.이들 어촌은 지나간 개발시대에 가난하고 고단한 국민들의 식량창고 역할을 했다.수산물 생산으로 끊임없이 단백질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동해안 관광 거점이면서 교역의 통로로 존재감을 키워왔다.그러나 어촌마을은 외지고 궁벽한 곳이 훨씬 많았다.세속의 권력과 부(富)에서 밀려난 이웃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로 몰려들었다.무수히 많은 이웃들이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바닷가 언덕의 벼랑 끝에까지 거처를 마련,외줄타기를 하듯 수십년 세파를 헤쳤다.억척스럽게 세월의 파고를 넘어선 어촌마을들이 지금 ‘힐링’ 시대에 동해안의 새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삼척,동해,강릉,양양,속초,고성을 잇는 국도 7호선을 따라 관광발전의 새역사를 쓰고 있는 어촌마을 변신의 현장을 찾아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희망을 꽃피우기 위한 탐사 기획보도 대장정을 시작한다.

1. 묵호등대 논골담길 마을

■ 논골담길의 눈물과 땀(과거)

논골의 과거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다.수산물이 넘치던 호황기에 그만큼 돈이 많이 돌았다는 추억을 반추하면서 동네 개가 등장했고,진흙탕 마을의 세파를 헤치는 필수용품으로 장화가 마을의 상징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묵호항을 한눈에 굽어보는 바닷가 비탈면과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행정구역으로는 동해시 묵호동에 속한다.

사람들은 묻는다.‘논’ 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을에 왜 ‘논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냐고?묵호 토박이 김인복(68) 어달동 노인회장은 “1941년 개항한 묵호항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말했다.묵호항에 오징어,명태가 지천으로 잡히고,바닷가 언덕 위 덕장에서 고기를 말리기 위해 쉴새없이 지게와 함지박으로 이고 져 나르던 때,비포장 마을길은 흘러내린 물로 논바닥처럼 질척거렸고,논골은 맑은 날에도 장화를 신어야하는 곳이었다.

고무 장화가 필수던 호황기 묵호에는 쉼표가 없었다.바다에서는 고깃배가 밤새 집어등(燈)을 밝혔고,낮에는 항구의 위판장에 수산물이 넘쳤다.바닷가 비탈면 무수히 많은 움막집이 게딱지처럼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김인복 노인회장은 “흙과 짚을 짓이겨 하룻밤 자고나면 집이 하나씩 생길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묵호항의 화수분에도 침체기가 찾아왔다.1960∼70∼80년대를 관통하면서 수산업 전성기,절정의 호황을 맛본 묵호항은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사람과 돈이 넘쳐나던 옛 영화를 추억의 한페이지로 돌려야 했고,논골에는 하나둘 불 꺼진 빈집이 늘어났다.

▲ 논골담길 담화마을에서 조연섭 동해문화원 사무국장과 묵호 토박이 김인복 어달동 노인회장이 묵호의 옛 추억을 주제로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 논골담길 담화마을에서 조연섭 동해문화원 사무국장과 묵호 토박이 김인복 어달동 노인회장이 묵호의 옛 추억을 주제로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 추억 되살리기(현재)

닫힌 뒷방처럼 쇠락했던 논골은 지난 2010년,다시 세상과 만남을 시도한다.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하고 동해문화원이 주관한 ‘묵호등대 논골담길 담화마을’ 프로젝트가 국비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논골은 다시 “나 여기 있노라”고 존재를 알렸다.

논골의 미로 같은 골목에 들어서는 나그네는 먼저 벽화를 만난다.마을의 4개 비탈길 벽면을 빼곡이 장식하고 있는 벽화는 전설 같은 묵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옛 묵호가 그대로 박제된 것 같은 박물관 마을에 지붕없는 자연 갤러리가 더해진 것이다.그래서 논골담길 ‘담’은 벽이라기 보다는 스토리(談)에 더 가깝다.논골담길을 초기 기획한 동해문화원 조연섭 사무국장은 “추억 속에서 곰삭은 묵호의 옛 이야기가 공공미술로 되살아 나 묵호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벽화 속 묵호는 타임머신을 탔다.자기 몸집 보다 큰 짐을 머리에 이고 나르던 슈퍼우먼 논골 아줌마는 ‘원더할매’로 진화했고,읍내에 3개나 있던 극장과 저 유명한 ‘나포리 다방’도 되살아났다.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동네 강아지 ‘만복이’,논골의 상징인 장화,대폿집과 만물상 잡화가게도 나그네를 반긴다.

벽화는 마을 어르신들과 공공미술에 앞장선 젊은 예술가들의 협력으로 탄생했다.논골담길의 언덕 꼭대기에는 밤바다를 밝히는 묵호등대(해발고도 67m)가 있다.묵호등대와 짝을 이룬 논골담길은 이제 지난해 기준 한해 50만명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지난 2016년에는 도시관광 활성화를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 업에도 선정됐고,‘묵호등대 논골담길 협동조합’도 만들어졌다.일종의 마을기업인 협동조합은 묵호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람의 언덕 카페와 게스트하우스,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다.

▲ 1960-70년대 논골담길 사진제공=동해문화원
▲ 1960-70년대 논골담길 사진제공=동해문화원
■ 논골담길의 희망(미래)

동해시는 최근 묵호등대와 월소택지 사이에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1만7150㎡ 부지에 내년 12월까지 80억원을 들여 180m 길이 천연 데크교량인 하늘 산책로,하늘 광장,아트하우스 체험·편의시설,도째비 숲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논골 인근 덕장길에서는 ‘언바람 묵호태’라는 이름의 먹태(명태)가 생산되고 있다.시는 더 나아가 2020년까지 연면적 200여평 규모의 체험관을 신축,명태 체험과 판매,소득창출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또 묵호항 인근 수변공원에는 해상 낚시체험공원을 갖추는 사업도 추진중이다.앞서 지난해에는 묵호에 야시장을 개설,시너지 효과를 유발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애환의 공간,논골이 묵호에 희망의 등대불을 밝혔다”고 말한다.사람들은 또 말한다.“논골만큼은 옛 기억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원더할매가 생존을 위해 오르던 비좁은 비탈길,흙 벽돌 뼈대가 주름살 처럼 드러난 옛집,골목 어귀에 자리잡은 재래식 변소,비탈길 한켠에 쓰러져 있는 덕장목(木) 등등.옛 이야기를 속삭이는 벽화와 묵호의 추억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구입 할 수 있는 관광자원이 아니다.

동해문화원 조연섭 사무국장은 “단체로 스쳐가는 관광객 보다는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논골담길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생각 같아서는 세계 장화 박물관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동해안 어촌관광전문가인 이광표 와바다다㈜ 대표는 “논골이 가진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주민참여의 기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조 국장과 이 대표의 말은 전국에 벽화마을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상황에서 곱씹어 봐야 할 진단이다.

주민 해설사 최춘자(75) 씨는 “논골담길 벽화 사업이 진행된 이후 잠자던 마을이 100% 다시 태어났다”며 “주차장 등 편의공간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만영 동해시 관광과 주무관은 “주거지역에서 민박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보완 조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동열·구정민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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