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무한회’라는 모임이 있다.중국 호북성의 무한(武漢)과 14년 째 교류를 이어가는 중이다.기업인을 주축으로 법조인,공무원,언론인 등 각계인사 20여명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민간차원의 우호를 다진다.지난 2004년 이곳에서 열린 LG배 세계기왕전이 교류의 출발점이 됐다.당시 한국의 이창호·박영훈 9단이 결승에 올랐고 강릉에서 활동하는 고광록 변호사가 한국 팀 부단장으로 참가한 게 인연이다.

이 때 이곳의 기업인들이 결성한 호북성기업가바둑협회가 한국과의 교류를 희망했고 다음해 40여 명의 대표단을 강릉으로 파견한다.이들과의 교류를 위한 한국 측 파트너로 강릉지역 기업인과 강호의 애기가(愛棋家)들이 모이기 시작했다.이렇게 출발한 교류가 지난 10여 년 ‘바둑’과 ‘경제’라는 두 가지 공통분모를 고리로 이어져 온 것이다.해를 거듭하면서 중국 측은 대륙 최대 호수인 동호(東湖) 변에 ‘아주기원(亞州棋院)’이라는 바둑리조트까지 만들어 교류의 본산으로 삼고 있다.

교류행사에는 양측 지방정부에서도 참가하면서 반민반관(半民半官)의 가교 역할까지 한다.몇 해 전 강릉을 다녀간 그쪽 유력 기업인은 무한 중심가에 ‘백제원(百齊園’이라는 대형 한국음식점을 냈다.또 다른 기업인도 무한과 형주에 2곳의 한국식당을 열었다.이 교류가 낳은 결실이다.최근까지 현지에서 활동한 프로기사 김승준 9단도 교류촉진에 큰 역할을 했다.그는 서울에도 국제바둑도장 ‘비바(BIBA)’를 운영 중인데,매년 강릉에서 외국인 연수생 여름캠프를 연다.

얼마 전 한국 측 방문단 10여명이 중국을 다녀왔다.지난해 사드 문제로 중단됐던 교류가 재개된 것이다.교류행사와 친선 대국을 통해 1년여의 간극을 단숨에 메웠다.때 마침 이곳 무한이 한국 단체관광제한 조치를 해제한 직후였는데,이 모임이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다시 찾은 아주기원엔 2개의 편액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한쪽엔 “經商道圍棋理道理互通(상업의 도리와 바둑의 이치는 서로 통한다)”라는 것이고 다른 쪽엔 “東湖波紋枰濤波濤相涌(동호의 물결과 바둑판의 무늬가 어울려 용솟음친다)”라는 문구다.반칙이 통하지 않는 게 바둑과 상업의 도리다.삶의 원리와 태도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이런 민간 교류가 거대정치가 놓친 틈을 메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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