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텃밭 일은 서툴고 엉성했다.단 한번도 삽과 호미를 들어본 적이 없는 손,노동이 익숙할 리 없었다.그러나 열정만큼은 대단했다.텃밭을 일구기 위해 무진 애를 쓰던 모습,결국 성공(?)했다.적어도 공동 작업장에서 퇴출되지는 않았으니….현직 판사였던 그를 만난 건 몇 해 전의 일이다.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공동 텃밭을 찾아와 “어린 아이들을 위해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고시공부보다 더 힘든가요?”라며 웃는다.“그래요?그럼 해봅시다”.하지만 그에겐 고난의 시작.

텃밭 일은 모두 수작업이다.밭을 갈아엎고 비닐을 씌우는 것에서부터 파종,모종작업까지 육체노동이 필수다.농기계를 쓰기엔 면적이 작고 무엇보다 재미가 사라진다.그러니 오죽 힘이 들까.삽,호미,물뿌리개,모종삽 등 농기구의 쓰임새를 잘 알고 활용해야 하지만 초짜에겐 모든 게 낯설다.30대 젊은 판사도 그랬다.‘했던 일 다시하고 또하기’가 반복됐다.원점!지쳐가던 그가 말했다.“제겐 공부가 더 쉽네요.농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이 말이 나오기까지 두 달.그 후,그가 달라졌다.얼치기가 아닌 겸손한 농부로.

공동 텃밭에 그가 합류하면서 도시 농사꾼(?)은 모두 5명이 됐다.그를 뺀 네 명은 자영업자와 공무원,회사원 등으로 농사에 일가견이 있었다.그러나 젊은 판사는 아니었다.모든 게 서툴렀다.무엇보다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 건 법정과 텃밭을 동일시하는 사고.그의 성격 탓도 있었지만 ‘직업’의 영향이 더 컸다.판사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그의 생각이 바뀐 건 1년 농사가 끝날 즈음이었다.법정 밖 세상과 겉돌던 그가 텃밭 일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과 어울린 것이다.

3년 전 ‘농사꾼 판사’는 외국 연수를 떠났다.조촐한 텃밭 술자리에서 그는 “농사를 통해 겸손과 배려가 무엇인지 배웠다”고 했다.그러면서 ‘법정 밖 판사’의 모습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농사를 통해 새롭게 자신을 돌아봤다는 그는 최근 밝혀진 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세상물정 모르고 법의 권위에 안주했던 ‘업보’로 여길까,아니면 몇몇 동료들의 일탈로 치부할까.농사를 통해 자연의 섭리와 겸손을 체득한 그는 재판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존재할 것으로 의심받는 ‘법관,그들만의 세계’도.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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