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수 허균400주기추모 전국대회추진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
▲ 정인수 허균400주기추모 전국대회추진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
허균(1569~1618)은 시대를 앞서 간 개혁사상에 충만했던 역사적 인물로 후대를 사는 우리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간 400주기를 맞이하여 새삼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전제주의 체제인 조선왕조에서 허균이 주창한 일련의 개혁사상은 대단한 것이자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결국 허균은 대역무도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참혹하게 처형당했다.그의 시신은 6토막으로 찢겨져 소금에 절여졌다가 한양을 비롯한 전국 6곳으로 나뉘어져 백성들에게 효시(梟示)되었다고 한다.그래서 허균의 시신을 수습할 수 없어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의 묘소가 없다.용인시 원산면에 있는 양천 허씨 묘역에 있는 묘는 허묘일 뿐이다.

어디 이뿐인가.허균만을 위한 공원하나 없다.그리고 마땅히 있어야 할 동상도 없으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허균은 과거에도 이단아였으며 현대사에서도 홀대 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구태의연에서 깨어난 진보적인 사상이 걸맞는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가장 진보적이었던 허균 역시 제대로 대접 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릉 출신 허균에 대하여 우리들은 그동안 무심했다는 사실에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교산허균400주기추모전국대회추진위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허균의 생애와 사상을 테마로 뮤지컬을 준비하는 한편 허균이 남긴 작품과 어록을 중심으로 하는 캘리그라피 전국대회를 추진하고 있다.뿐만 아니다.우선 아쉬운 대로 허균만을 위한 공원을 건립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또한 억울한 허균의 죽음인 신원(伸寃) 역시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125년 전 조선왕조 시대의 전봉준이 그러했듯 국회법에 근거한 청원권을 행사하여 허균의 신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광해일지(광해군 131권 10년 무오8월(태백산본)에 근거하면 그의 최후는 서문(西市) 밖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서문은 오늘날 서소문 공원일대이며 이곳은 조선시대의 공인된 처형장소이기도 하다.지난 2015년 5월 서울 중구청이 주관한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범국민대책위와 학술토론회에서 서소문밖 처형지 희생자는 천주교 신자 외에 조선시대 허균을 비롯한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처형된 역사의 현장이라는 결론을 공유했다.서소문공원은 요즈음 새로운 단장에 박차를 가해 8월 준공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서소문역사 공원은 비록 지자체에 하나인 중구청 산하라 할지라도 조선왕조에서부터 구한말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선각에 눈을 뜬 위인들의 사회변혁을 통한 역사 발전과 민족의 혼이 서린 대한민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인 만큼 허균400주기 추진위에서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무엇보다 이곳에 역모(逆謀)의 누명(陋名)을 쓰고 처형당한 허균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표지석 설치가 무사히 성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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