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에 두루 마셨던 것으로 전해오는 창포주
고려말 익제 이제현의 ‘단오’ 시에서,
포은 정몽주가 둔촌 이집에게 보낸 시에서도 등장

▲ 허시명 술평론가·막걸리학교 교장
▲ 허시명 술평론가·막걸리학교 교장
강릉 단오제 기념 전통주 선발대회 심사장에서 나는 80잔의 창포주를 맛보았다.통상 심사할 때는 술을 마시지 않고 입안에서 굴리다가 가셔내는데,이번에는 창포주의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약간씩 목넘김을 시도했다.80잔의 창포주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소감은,독하고,쓰고,달콤하고.강하다는 것이었다.제철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철에 만들어 즐기는 술이 있다.명절과 절기에 맞춰 빚었던 술들이 그런 술이다.설날 아침에 약재를 우린 도소주,정월 대보름에 차갑고 맑은 귀밝이술,삼월삼짓날의 진달래꽃 두견주,청명의 청명주,단오에 창포주,유두날에 유두음이라는 술,추석에 햅쌀로 빚은 신도주,중양절에 국화주 들을 꼽을 수 있다.명절이 주는 삶의 활력만큼이나,세시주가 주는 활력이 있는데,우리는 오래도록 세시주를 잊고 지내왔다.강릉 단오에는 대관령산신에게 올리는 신주가 있고,시민들의 성미로 빚는 특별한 단오주가 있다.하지만 이 단오주가 창포주는 아니다.단오에 두루 마셨던 것으로 전해오는 창포주는 고려말 익제 이제현의 ‘단오’ 시에서,포은 정몽주가 둔촌 이집에게 보낸 시에서도 등장한다.단오에 그네를 타고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관습처럼,창포로 술을 빚어 마시는 관행도 오래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창포주 제법은 허준의 ‘동의보감’과 서유구의 ‘임원십육지’에도 등장한다.창포뿌리를 썰어 찹쌀과 누룩을 섞어 술을 빚는데 중풍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약이 많아진 시대에 술을 약 대신한다는 것은 술꾼들의 핑계겠지만,술을 마시되 몸을 아끼려고 했던 옛 사람의 지혜를 창포주에서 엿볼 수 있다.이번 선발대회의 출품주는 창포 막걸리로 한정되어 있어,모두가 탁했다.막걸리는 약주나 소주보다는 집에서도 쉽게 빚을 수 있어,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주최측이 막걸리로 한정했다.출품된 막걸리는 대부분 물을 타지 않은 원주여서 알코올 도수가 높고,농도도 짙었다.그래서 알코올 도수 6도인 청량한 막걸리에 견주었을 때 도수가 2배 이상 높아 쓴맛이 돌고,묵직하면서도 단맛이 강하게 돌았다.게다가 창포 뿌리를 달여서 넣거나,창포 뿌리즙을 넣어 약재의 쓴맛이 도드라진 술들도 있었다.

심사가 끝나고 시음하면서도 창포탁주를 조금씩 맛볼 수는 있어도,편하게 마시기는 쉽지 않았다.출품자들이 향기 있고 밀도 있는 원주를 그대로 내놓다보니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상을 받은 술들도 도수가 높아 사납고,강렬하고,달콤해서 사람의 혼을 빼놓았다.그래서 앞으로 심사기준은 상품성까지 고려하여,창포탁주는 알코올 도수가 12도 어름일 것이라고 하든지 아예 맑은 술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강릉 단오제를 통해서 창포주를 불러내는 작업은 무척 흥미로웠다.창포주가 상품으로서 가능하리라는 기대감도 갖게 하였다.올해 대회 입상작이 내년 단오제 행사장에 상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기도 했다.잊혀진 창포주가 되살아오면 단오의 기운을 더해줄 것이고,음식으로서 문화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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