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길 '동해북부선'을 열자] 2. 양양구간 현장을 가다
1938년 양양광산 본격 개발
한국전쟁 전 하루 1∼2회 운행
주변 동해북부선 철길 흔적 뚜렷
지역주민 철도 건설 관심 불구
정부 후속절차 없이 ‘묵묵부답’

▲ 현재 폐광돼 방치된 양양철광 선광장.  박상동
▲ 현재 폐광돼 방치된 양양철광 선광장. 박상동

# 양양광업소-동해북부선 존재이유,일제 수탈의 흔적

양양의 서쪽 설악산 대청봉 끝자락에 위치한 서면 장승리에는 양양 광업소가 있다.양양광산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8년이다.일제는 1933년 시험채굴을 해오던 중 이곳에 자철 함유량이 50~80%인 양질의 철광석이 대량으로 매장됐음을 발견하고 본격 채광했다.동해북부선은 이곳에서 생산된 철광석 수송에 주로 이용됐다.당시 양양광업소 주변에서 거주한 지역주민 김지윤(84)씨는 “한국전쟁이 날 때까지 화물열차가 하루 1~2회씩 부지런히 오갔다.열차가 이곳에서 나온 철광석을 가득 싣고 양양에서 원산까지 올라갔다”고 증언했다.일제는 수탈 편의를 위해 광업소와 양양역사 사이에 자철광 수송을 위한 케이블카(삭도)를 설치하기도 했다.이곳 주민들은 케이블카를 ‘솔개미차’라고 부른다.

취재진이 김씨와 함께 찾은 양양 광업소는 폐광이 된지 오래된 탓인지 광업소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폐허를 방불케 했다.과거 선광장으로 쓰이던 구조물의 흔적만이 일부 남아있을 뿐이었다.김씨는 선광장으로 쓰였다는 구조물을 가리키며 “저곳에서는 지하 갱에서 캐온 철광석을 크기별로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며 “화물열차가 아래 홈이 있는 벽면(플랫폼)쪽에 정차하면 철광을 내려보냈다”고 말했다.이곳 갱도 중 하나인 논화갱 주 광체는 연장 180m,맥폭 10~20m,심도 약 70m가 확인된다.양양갱 최대 규모의 광체는 주 광체와 칠구광체였다.주 광체는 연장 300m,맥폭 20~40m,심도 140m이며 칠구광체는 연장 100m,맥폭 10~20m,심도 100m의 규모다.이밖에도 도목갱,수갱 등 4개의 갱도가 있었다.당시 광부들이 광차에 철을 싣고 밀어서 운반했다.일제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년부터 전쟁무기 조달을 위해 본격 대량 채광에 들어갔고,하루평균 210t규모의 철광을 속초항을 통해 일본 야하타 제철소로 반출했다.

 

▲ 옛 양양철광 선광장.  사진제공=양양문화원
▲ 옛 양양철광 선광장. 사진제공=양양문화원

양양철광에 있었던 선로를 따라가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화물열차가 다니던 터널이 목격됐다.옛 터널 위로 콘크리트를 덧씌워 놓은 모습이었다.80여m 남짓한 길이인 콘크리트 터널 안쪽에 남아있는 철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현재는 각종 건설차량들이 터널안을 드나들고 있었다.터널을 통과해 나와보니 당시 화물열차가 달렸을 동해북부선 철길의 흔적은 더 뚜렷해졌다.터널 주변 노반을 따라가다보면 곳곳에서 철둑길을 볼 수 있고,울창한 수풀 속에는 현재는 폐쇄된 거마리터널까지 발견할 수 있다.김씨는 “철광석을 실은 화물열차가 이곳 터널들을 통과해 양양역 방면으로 향했다”며 “양양광업소 인근 터널 옆 공터에는 화물열차들이 대기하는 장소였다”고 회상했다.이어 “사실상 일제는 철광석을 수탈하기 위해 동해북부선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라고 말했다.

 

▲ 동해 북부선 옛 양양역 터를 인근 아파트 주민이 가리키고 있다.
▲ 동해 북부선 옛 양양역 터를 인근 아파트 주민이 가리키고 있다.

#철도노선 어디로 가야하나-지지부진한 국책사업에 주민들 불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동해북부선 철도 건설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새로 놓이게 될 양양지역 철도 노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노선에 대한 갖가지 설들이 제기되는 등 새로 만들어질 동해북부선 노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하지만 주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기존 노선의 용도폐지 없이는 새로운 노선을 만들 수 없다’는 국토교통부의 입장과 ‘새로운 노선이 먼저 계획될 경우 기존 노선의 용도 폐지가 가능하다’는 기획재정부의 입장이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동해북부선철도시설은 정부의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안(2016~2025)에 포함되고도 아무런 후속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수십년이 넘게 철도청 부지에서 경작활동 등을 하는 지역주민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철도 부지는 국토해양부로부터 위탁받아 철도시설의 건설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관리한다.양양지역의 옛 철도노선은 현재로서는 유일한 동해북부선의 노선이기 때문에 매매 등이 이뤄질 수 없다.다만 임대는 가능해 지역주민들이 매년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의 임대료를 내며 경작활동 등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양양역 옛 터 주변에서 석재공장을 20년째 운영해온 정한수(61)씨는 “이쪽에 철도 노선이 다시 들어설 가능성은 희박한데,동해북부선 철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지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수십년째 임대형식으로 이뤄지다보니 주민들이 권리권 행사도 못하는 것은 물론 건물 등 시설물 설치에도 일부 제한이 있는 등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양군은 새로 세워질 동해북부선과 관련,지역 내에 양양역,중광정역,인구역 등을 설치해 동해권의 기간철도로서의 기능과 관광산업철도서로의 기능도 병행한다는 기본 계획을 세웠다.지역 내 3개의 기차역을 설치해 강릉~인구역~중광정역~양양역~속초로 이어지는 동해북부선철도 양양구간 노선을 만든다는 계획이다.이같은 내용은 ‘동해북부선철도 양양군관내 구간계획 노선’에 반영돼 있다.하지만 이 역시 지자체 차원의 구상일뿐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지역 내에는 과거 일제가 건설했던 철도부지가 일부 남아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도로 등 기반시설로 편입돼 옛 노선을 철길로 활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고 양양군은 보고 있다.현재 양양군은 강릉~제진 간 동해북부선 철도계획 가시화에 대응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양양군 관계자는 “철도 설계에 대한 용역은 국가사업이지만 양양군 차원에서도 전문가들과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보고,지역의 발전을 위한 노선 계획을 요구할 것”이라며 “현재 노선 대안을 2개 정도 선정하는 한편 노선 주변 개발 계획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반/이호·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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