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나
경복궁 옆 청와대 사랑채
국립현대미술관 등
명작·대가 작품 긴장감 선사
감응 일으켜 ‘없던 것 생기게’
자치단체 예술 지향점 제시

▲ 데보라헤이 ‘솔로’ (1966)
▲ 데보라헤이 ‘솔로’ (1966)
무덤덤이 일상이 되지 않도록

비워야 쓸 수 있다.비워놓지 않으면 식탁은 주방의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정리대로밖에 쓰이지 않는다.치워버릴 것과 다른 것은 물론 있다.예술작품은 항상 자리를 차지할 만큼 가치가 있고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다.작품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서와 감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다.그 문화자원이 여러 관람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재산이 된다.

지방자치에서 문화예술을 강조하는 지역들이 늘고 있다.예술생산에는 가성비를 따질 것도 없이 엄청난 설비 투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그건 금수강산의 체질이 바뀔 만큼 무자비한 개발 중독일리도 없다.예술에서는 품위 있는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것도 가능하다.예술적 자극은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감응을 일으킨다는 건 없던 것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자극을 주고 조용한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고 아무 감동 없던 차가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이다.

▲ 로버트휘트먼 ‘붉은전선’(1967)
▲ 로버트휘트먼 ‘붉은전선’(1967)
그런 예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경복궁 근처 두 전시관이 있다.두 곳이지만 세 가지 전시를 만날 수 있다.국립현대미술관의 아시아전,EAT전과 청와대사랑채 미술전시가 그것이다.청와대와 가까운 곳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청와대 바로 앞 사랑채도 경복궁 옆에 있다.그곳에는 그동안 대중에 공개되지 못했던 작품들이 나왔다.세계적인 박물관들이 황실의 재산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출발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옛 국전(國展) 수상작,사계절을 담은 작품들,전혁림의 푸른 바다 통영항,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설명한 김중만의 사진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시아전은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라는 이슈를 다룬다.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인 오리엔탈리즘의 문맥으로 읽을 수 있는 주제다.서구 관점에서 ‘아시아’는 이해되지 못했기에 신비로운 것이기가 쉽다.긴 시간 영상을 살펴보아야 하는 작품이 매 전시장마다 있어 집중이 쉬운 것은 아니다.사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그렇게 많은 벽을 만들고 조명을 붙인 다음 작가가 단지 연필로 스케치한 몇 장의 종이를 붙이면 그 많은 작품설계 비용은 작가의 몫이 되지 못하기 십상이다.미술관 전시에서 작가창작비라는 것이 작년부터 처음 도입되긴 했다.하지만 여전히 전체를 3분할해 운송비,작품설치비,홍보출판비 정도가 크게 쓰이는 전시비용이다.즉 부수적인 일들에 수천만 원씩을 쓰기는 해도 작가에게 돌아갈 비용은 거의 없는 것이다.그런 내용으로 5개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작품들,시간을 두고 보아야할 영상들,갖가지 물건으로 메시지를 구성해놓은 설치작품들이어서 전시에의 집중이 쉽지는 않았다.

마지막 전시공간에서 정말 시선을 확 끌었던 것은 EAT 전시였다.EAT란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의 실험(Experiment)을 보여주었던 작가들 그룹(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을 말한다.백남준이 스승으로 여겼던 존 케이지,그의 제자들인 로버트 라우센버그,머스 커닝햄이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가들이다.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 이전에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피아노 연주를 보여준 4분 33초의 존 케이지.백남준은 관람자로 앉아있던 그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는 것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역시 케이지의 제자이며 팝아트(Pop Art)의 선조가 된 라우센버그가 낙하산을 끄는 퍼포먼스로 이목을 끈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다.

전시는 텅 빈 공간을 만든 다음 그곳을 차지할 가치 있는 작품을 채우는 기술로 작동한다.그때 알려진 명작이나 대가들의 작품은 딴생각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플라톤의 말처럼 비이성적으로 미치도록 빨려드는 영감을 주는 작품들은 예술의 자격을 누려 마땅하다.청와대사랑채의 작품들이나 EAT 작품처럼 작가나 작품에 대한 오마주는 전시 집중도를 높게 한다.자치단체 목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문화예술이 어떤 가치를 키우고 목표로 해야 할지를 참고하게 한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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