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2017년 9월부터 시작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가 지난 6월 7일 백서를 발간하며 일단락되었다.국정화 파동에 휩쓸렸던 역사과 교육과정도 개정을 거쳐 6월 21일자로 행정예고되었다.진상 조사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어겨 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정권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 농단’이었다.무엇보다 고위직은 물론 중하위직 공무원까지 청와대의 지시라는 이유로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행위를 일삼았다는 사실이 낱낱이 밝혀져 씁쓸하다.그럼에도 여전히 상명하복의 원칙을 내세우며 그들을 두둔하는 공무원들이 있다.상명하복은 법이 아니다.누구보다 명령 위에 존재하는 법을 따르며 법치주의의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이를 어긴 공무원을 옹호하는 가치전도된 항변을 들으며 새삼 삶의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한편 개정된 역사과 교육과정이 발표되자,이번에는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재현되었다.보수에서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를 쓰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 용어 중 무엇을 넣느냐라는 논쟁은 이명박 정부부터 있어왔다.이후 10여 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면 보수,민주주의를 말하면 진보라는 프레임까지 생겨났다.자유민주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대립구도는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것이고 설득력도 없다.자유민주주의라고 쓰지 않고 민주주의라고만 쓰면 그것이 곧 인민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보수의 협소하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들을 때마다 해방 직후 여러 이름의 민주주의가 치열하게 논쟁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해방이 되자 일제 시기 식민 권력의 혹독한 전제와 독재 속에서 한국인들이 독립운동의 원리이자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상으로 보듬고 키워왔던 민주주의가 마침내 음지 생활을 끝내고 햇살 앞에 섰다.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민주주의를 외치고 동경했다.정치세력은 좌,우,중도의 노선에 따른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좌익은 노동자와 농민이 주도하는 좌우연합국가 건설을 내용으로 하는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우익에 대해서는 반민주주의세력이라고 대립각을 세웠다.우익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르며 민주주의의 반대는 자유가 없는 공산주의라고 좌익을 공격했다.좌익과 우익은 민주주의를 상호 공격의 잣대로 쓰기도 했지만,중도세력은 민주주의를 민족 통합의 가치로 내세웠다.이들은 미국식도 소련식도 아닌 한국식 민주주의를 주장했다.그 이름도 사회민주주의,연합성 신민주주의,조선식 신형 민주주의,신민주주의 등으로 다채로웠다.핵심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누리는 계급연합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6월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다.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인민민주주의냐’라는 적대적인 민주주의 인식을 낳았다.이제 2018년 6월을 거치며 한반도는 평화의 시대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북미정상회담이 있었고 반공과 반북을 내세운 냉전세력인 보수가 지방선거를 통해 무너졌다.세기적 격변 끝에 찾아오는 6월 25일이라 더욱 남다르다.더 이상 오직 하나의 민주주의만을 강요하는 냉전의 시대는 갔다.해방 직후 중도세력이 다양한 민주주의를 꿈꾸면서 민족통합을 모색했듯이 우리도 다양한 민주주의를 빚어내며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