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출생, 광복 일주일 전 피살
깨알같은 글씨로 적은 시대모습
러시아·일본 떠돌며 작품 집필
금강산 답사기·가족에 쓴 편지
시·소설·평론·에세이로 남아
목숨걸고 지켜낸 유고 1000점
습작노트 등 미공개 사료 발견
100주년 기념 학술 대회서 공개
근대사 희귀자산 연구 활성 기대

▲ 두루마기를 입은 심연수 시인
▲ 두루마기를 입은 심연수 시인
일제말기 한국문학 지켜낸 심연수 시인 탄생 100주년

1943년 2월 8일 전쟁에 광분한 일본 땅에서 ‘소년아 봄은 오려니’를 탈고한 심연수시인(1918~1945).일제 핍박으로 8세에 강원도를 떠나 러시아,북간도를 거쳐 용정 그리고 일본 유학에서 다시 북간도로 이주의 삶을 살다가 광복 1주일 전에 피살된 불꽃같은 삶을 문학에 쏟아냈다.탄생 100주년인 올해 출생지 강릉을 중심으로 춘천,원주,인제 특별전시회와 출생일인 7월 3일 기념대회,총서 발간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100주년을 계기로 전모가 공개되지 않았던 심연수 문학사료자산 가치와 활용 전망을 4회로 나눠 특집보도한다.

1.방대한 문학사료와 미공개 동시

2.습작노트 담은 문학의 꿈과 생애

3.편지 엽서 366점에 비친 강원인의 삶

4.근대사 조명과 문학사료 활용

일제강점기에 4개국을 떠도는 시련의 삶을 산 심연수가 한 치도 놓지 않았던 문학의 꿈은 250편이 넘는 시와 소설,평론,에세이로 오롯이 살아있다.풍부한 육필원고의 존재는 그 시대를,그 문학을 생생하게 교감할 수 있는 훌륭한 텃밭이다.100주년을 계기로 심연수 육필원고를 비롯 각종 문학사료들이 7월 3일 오전10시 학술대회에서 표면화되는 것을 계기로 최근 저조했던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심연수 시인은 1940년 수학여행지마다 관광스탬프를 찍어 수첩으로 남겼다.
▲ 심연수 시인은 1940년 수학여행지마다 관광스탬프를 찍어 수첩으로 남겼다.
심연수가 직접 쪽수를 매기며 단정하면서 유려한 필치로 쓴 시원고집과 문집노트 10권이 현전하고 있으며 습작원고철,창작노트,시상이 담긴 수첩과 일기에 이르기까지 육필본이 날것 그대로 보존되어있다.1936년 2월 백지에 펜글씨로 베껴 쓴 ‘초등조선역사’책과 관동팔경 등을 옮겨 적은 창가집,시성 타고르 노트 등이 온전히 있으며 깨알같은 글씨로 언제 어디서 샀는지 일일이 메모한 책 200여권과 문예부 사진 등이 고스란히 유산으로 남겨 문학사와 근대사에 희귀한 자산이 되고 있다.

▲ 미공개 동시 ‘반지그릇’
▲ 미공개 동시 ‘반지그릇’
심연수 문학사료는 유고가 첫 발굴된 2000년 당시에는 중국에 있어서 쉽게 볼 수 없었으나 현재는 고향 강릉의 품안에 있다.사후 55년간 목숨 걸고 유고를 비밀스럽게 간직해 온 동생 심호수(1925~1916)의 차남 심상만씨(52·강릉시)가 부친의 뜻에 따라 한국으로 귀화 신청하면서 1000점 가까운 문학사료를 고국으로 들여와 보존하기 때문이다.극히 일부는 강릉시에 기탁 관리됐으나 대부분 문학사료는 삼척심씨대종회측 깊숙한 곳에 보관돼왔으며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기로 미공개된 유고 유품까지 한꺼번에 기자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부친을 닮아 낱장도 정확히 기억하는 심상만씨와 심재종 대종회장의 흔쾌한 협조로 상당한 양의 자료를 세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 일본 동경에서 유학 때 가족에게 보낸 편지
▲ 일본 동경에서 유학 때 가족에게 보낸 편지
시대적으로 출판이 어려웠기에 ‘문집’이라고 인쇄된 노트나 원고지를 엮어 일일이 쪽수를 매겨가며 작품을 정서한 시원고집은 기존의 시선집 ‘지평선’외에 ‘수평선’ ‘무적보’ ‘빈사초’ ‘야업’ 등 10권이 있다.미공개 사료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습작노트와 시 창작의 토대가 된 작은 수첩류이다.연필로 학습한 과학공책 위에 펜으로 시와 소설을 습작하거나,한쪽 면은 수학노트로 반대면은 시창작 지면으로 쓸 정도로 남다른 습작열을 엿볼 수 있는 묶음이 20여권에 이른다.황규수의 ‘심연수 원본대조 시전집’(2007)에 실리지 않은 동시가 이번 사료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반지그릇’ ‘언 손’이 발굴됐다.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 ‘누’ ‘구슬’과 400자 원고지에 쓴 ‘청춘의 열등(熱燈)’,에세이 ‘감사한 청춘’ 등이 새롭게 나타났다.심연수의 화학 공책에는 습작 시 ‘어머니’가 들어있었으며,1942년 일본대학 재학 때의 신문연구노트에는 정몽주의 생애와 활동이 쓰여있었다.

낡은 검정색 수첩 속에서는 겨울방학을 틈타 학교에서 ‘고학증’을 발급받아 영하 30도 혹한의 들판을 걸으며 옥편과 달력을 팔아 학비를 조달했던 고단함이 묻어난다.목단강,영안,밀산 등 북간도 일원 조선인촌을 다니는 동안 동포의 참상과 고유 세시풍속 전승을 꼼꼼히 메모하였다.마을별 조선인 인명도 수첩에 빼곡히 기록돼있다.

1943년 9월 13일 일본대학 졸업 후 도피해 다니다가 10월 31일 시모노세키항구에서 배를 타며 급하게 휘갈겨 쓴 엽서,피살되기 직전 영안현 성서학교에 있으면서 띄운 편지와 우편엽서류는 370여점에 달한다.신혼기간이 불과 넉달이었던 부인 백보배와의 사진 등이 100건을 훌쩍 넘고,용정을 출발해 금강산 서울 등을 답사한 수학여행 관련해 기행시조집 기행산문과 초고,방문지 관광스탬프수첩까지 풍부하게 남아있어 생활사 방면에도 희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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