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칠수 없는 일임에도 인간의 호기심은 막을 수 없다
전문가·빅데이터 분석보다
동물 예언에 곤두서는 촉각
축구만큼 예측불가능한 삶
천문학·점성술 등으로 대비
미래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
흥미로운 문화현상에 투영

▲ 점쟁이 고양이 아킬레스
▲ 점쟁이 고양이 아킬레스

지난 14일 러시아월드컵이 시작됐다.굵직한 국내외 정치적 이슈들로 평소보다는 관심을 덜 받은 게 사실이지만,러시아월드컵은 연일 새로운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지난 월드컵우승팀이었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2대 0으로 이긴 우리 팀의 경기는 그야말로 화제가 되었다.앞으로도 러시아월드컵은 수많은 뉴스와 이야기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단연 월드컵의 우승팀에 쏠려 있다.러시아월드컵 우승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문어 파울(Paul)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린다.점쟁이 문어로 알려진 파울은 2010년 월드컵에서 독일팀의 승패를 백퍼센트 맞추면서 유명해졌다.당시 파울의 ‘예언’(과연 파울도 과연 이걸 예언이라고 인지했는지 의문이지만) 장면은 세계적 이슈가 되어 독일,스페인 등의 방송사에 생중계로 보도됐다.스페인의 우승을 맞춘 파울은 스페인의 명예시민으로 위촉되기도 했다.사람들은 파울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거리에서 파울 코스프레를 했다.파울은 광고모델이 되었고 그를 본 딴 수많은 기념품이 만들어졌다.파울이 죽은 후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파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점쟁이 문어 파울의 일생’도 제작되었으며,심지어 미래를 알려준다는 파울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졌다.
 

▲ 점쟁이 문어 파울
▲ 점쟁이 문어 파울

파울 사후,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월드컵이 다시 시작되자 사람들은 파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포스트 파울’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파울의 후임자로 고양이,매,테이퍼 등이 거론되었는데,이번 월드컵에서는 러시아 출신의 고양이 아킬레스가 문어 파울의 명성을 이어받는 모양새다.이미 아킬레스는 세 차례 연속으로 우승팀을 맞추어 파울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사실 이런 문화적 현상은 당황스럽기도 하다.이미 수많은 축구전문가뿐만 아니라,빅데이터까지 동원되고 있는데,동물예언이라니! 월드컵이 시작되면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총출동하고,빅데이터 분석까지 동원되어 매 경기를 분석하고 예측한다.하지만 전문지식과 첨단과학에 기댄 분석과 예측조차 종종 어긋날 때가 많다.이번 한국-독일전만 하더라도 전문가의 견해와 모든 데이터는 한국팀의 패배를 예측했지만,우리팀이 2대 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그래서일까,사람들은 데이터를 참고하면서도 아킬레스의 앞발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 같다.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과학적 예측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각본 없는 드라마’인 운동 경기,그 가운데서도 축구는 수십 명의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예측불가능한 속성이 강한 스포츠다.월드컵과 관련된 기사에는 늘 이변,충격,놀람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축구는 훈련과정과 판정과정에 고도의 과학이 추구되는 운동이지만,곰곰이 생각해보면 축구는 가장 원초적인 게임인 동시에 순간성과 우연성이 결합된 스포츠다.축구는 팀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공의 탄성,날씨,선수들의 심리상태와 컨디션,관중들의 응원이 합쳐져 만들어진 우연성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우승팀을 점(占)치다’라는 일상적 표현에는 이미 예측의 어려움이 충분히 담겨 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승리의 원인을 백 가지 정도는 찾을 수 있다고 한다.패배의 원인도 마찬가지다.그것은 과학적 분석의 결과라기보다는,결과에 근거한 해석이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월드컵 우승팀이 가려지고 나면,우승팀이 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유가 제시될 것이다.선수들의 투혼과 감독의 영민함,훌륭한 팀워크에 개별 선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하나둘쯤 보태져 스토리가 있는 분석이 된다. “그러니 우승할 수밖에.” 긍정의 끄덕임과 감탄도 이어질 것이다.그러나 월드컵에 출전하는 어떤 팀이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그걸 생각하면 결과 이후의 분석은 끼워맞추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결과론적 해석은 간편하고 위험부담도 없지만,예측은 어렵다.분석가보다 예언자에게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인간의 삶은 축구만큼이나 우연성,순간성,예측불가능성의 속성을 갖고 있다.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사람들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고안하고 장치들을 마련해 놓았다.천문학,점성술,관상,손금,족상(足相),명리학,쌀점,타로점,동물점 등 각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방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계획대로 따라주지 않는 인생 시간표,노력만큼 거둬지지 않는 결과는 사람들에게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는 게 아닐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삶이 잘 풀리지 않으세요?’ ‘고민을 상담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붙은 작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손바닥을 내민다.입시와 구직,연애로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은 카페(요즈음은 과거의 무거운 분위기를 탈피하여 힐링카페 또는 상담소라고 이름붙인 점집들이 많다)로 들어가 타로점에 자신의 미래를 묻기도 한다.그뿐인가? 블로그,전화,스마트폰은 현실이 답답한 사람들,조금이라도 나아질 희망을 찾고 싶은 사람들과 언제나 접속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과는 요행히 맞기도 하고,틀리기도 한다.사실 신통한 점쟁이 문어 파울도 틀린 예측을 하기도 했다.인류역사상 가장 유명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도 모든 것을 다 맞추지 못했다.이런 삶의 예측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막을 방법이 없다.인간의 궁금증이 만들어낸 이 흥미로운 문화와 현상,이번 월드컵에서도 고고한 러시아 고양이 아킬레스가 내밀 앞발에 시선을 떼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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