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수 수요포럼 회장
▲ 정인수 수요포럼 회장
강릉이 낳은 당대의 시인 심연수 탄생 100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태생지인 강릉을 중심으로 기념사업을 다채롭게 전개하고 있음은 고무적인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필자는 심연수시인과 남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필자가 공무 출장으로 2000년 7월 중국 연변을 드나들면서 최초로 심연수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강릉출신이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강원도민일보에 이 사실을 알려 발굴 작업의 단초를 제공했었다.뿐만 아니라 심연수 시인의 유고를 소중하게 간직해온 동생 호수씨 가족과도 한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강릉의 저명인사들과 연변을 방문했으며 마침내 그들의 고국산천 강릉방문을 주선하면서 발굴 작업에 일조했던 것이다.이때 음양으로 적지 않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분은 당시 심기섭 시장으로 그의 협조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강원도민일보의 심층취재를 통해 2000년 8월16일자 광복절을 기해 심연수 시인이 대서특필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를 계기로 심연수 시인 선양사업은 변방이라는 불리한 여건임에도 강릉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으로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것이다.

심연수 시인과 한 살 터울인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행사는 작년에 모교인 연세대를 비롯하여 일본 릿쿄대,미국 뉴욕·뉴저지 동포 모임과 중국 선양 등 국내외적으로 거창하게 치러졌다.심연수 시인 또한 100주년 행사가 강릉을 중심으로 그의 활동무대인 연변,그리고 하얼빈 등지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그러나 행사규모는 윤동주 시인에 비해 차별된다.윤동주 시인의 경우는 한국조폐공사에서 발행하는 기념주화를 발행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운동주 달을 쏘다’라는 스펙타클한 뮤지컬갈라쇼가 무대에 올려 지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의 경우 27세에 일본 복강형무소에서 옥사한 직후 모교 중심으로 그의 작품이 선양되기 시작하였다.동시대를 같이 산 심연수 시인 역시 27세에 8·15해방 일주일 앞두고 애통하게도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일본인에 의해 피살됐지만 사후 55년간 그가 남긴 유고는 전혀 빛을 보지 못한 채 암장되었다가 뒤 늦게 빛을 보게 된 간극과 환경의 탓이라 할지 모르지만 윤동주 시인에 걸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2005년 교육부에 대한민국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에 18종의 윤동주 시가 수록되어 국민 시로 승화 된지 오래지만 윤동주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남긴 심연수 시인의 작품은 단 한편도 실리지 아니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교과서 수록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교과서 내용 선정 등은 집필진 협의 후 수록 여부가 결정된다”고 회시했다.심연수 시인 평가에 있어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하는 모양인데 일제 강점기 척박한 만주에 거주한 조선 시인들의 문학 활동은 지엽적 일부 자구(字句)에 연연하여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원컨대 심연수 시인이 윤동주와 이육사와 같은 동등한 대접을 받아 교과서에 수록 되어 국민들이 애송할 수 있는 ‘국민 시(詩)’로 거듭 날 수 있도록 탄생 100주년을 반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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