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통일길 '동해북부선'을 열자] 4. 동해북부선 고성구간
고성구간 83㎞, 전체 43.1%
모두 32개 정차역 중 13곳 위치
1932년 외금강역-고성역 개통
이후 금강산 관광 폭발적 성장
원산∼양양간 연결 ‘북천철교’
한국전쟁 이후 황량하게 방치
2011년 보도·자전거길 재탄생

동해북부선 고성 노선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금강산 관광객들로 늘 만원이었다.과거 동해북부선 철도 노선 가운데 고성구간(남북 고성 포함)은 전체의 43.1%를 차지했다.함경남도 안변역∼양양역 구간 총연장 192.6㎞ 가운데 고성구간은 83㎞로 남고성 지역만 44㎞다.정차역도 모두 32개 역 중 13개가 고성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북으로부터 남애,장전,외금강,삼일포,고성,초구 등 6개 역이 북고성지역에,제진,현내,거진,간성,공현진,문암,천진리 등 7개 역이 남고성 지역에 설치됐었다.

일제는 1927년부터 대대적인 한반도 철도망 확장 사업(조선철도 12년 계획)을 추진했다.이 사업으로 건설된 노선 중 남한 노선에 속하는 동해선은 석탄과 목재,광물,해산물의 반출,함경선과 부산과의 연락을 목적으로 추진됐다.동해북부선은 함경남도 안변군에서부터 강원도 통천군,고성군,양양군 등 4개 군에 만들어졌다.경원선 안변 분기점에서 시작해 양양까지의 총 노선 거리는 192.6㎞다.동해북부선은 1929년 9월11일 안변~흡곡 사이가 개통이 되고,1932년 11월1일 외금강~고성,1935년 11월1일 고성~간성 구간이 개통됐다.이후 1937년 12월1일 양양(192.6㎞)까지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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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북부선 고성구간은 금강산 관광 노선

동해북부선 고성구간에 해당하는 기차역은 동해북부선 외금강역에서 고성역에 이르는 10.4㎞ 구간이 1932년 11월1일 개통됐다.외금강역은 강원도 고성군 신북면에 속한 지역으로 안변에서 101㎞ 떨어져 있다.세계의 명산인 금강산의 하차역이다.이후 외금강~고성 사이에 삼일포 관광객이 많아지자 1933년 8월1일 삼일포역이 신설됐다.삼일포역과 고성역까지의 거리는 2.2㎞다.삼일포 하차지로 역원무배치의 간이역으로 돼 있다.삼일포는 신라시대 영랑,술랑,남석,안상 등 4명의 묵객이 호수 위에서 노를 젓고 3일간 돌아가는 것을 잊고 놀았다 해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어 1935년 11월1일에는 고성역에서 간성역에 이르는 39.3㎞가 개통됐고,1937년11월18일에는 동해북부선 간성역에서 양양역에 이르는 41.9㎞가 개통돼 일반운수영업을 개시했다.동해북부선은 외금강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증진시켰다.당시 외금강·해금강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원산에서 장전까지 배 또는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했다.동해북부선의 개통과정을 보면 외금강으로 이어지는 구간 공사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는 동해북부선에서 금강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이와함께 금강산과 해금강을 연결함으로써 관광노선으로서의 가치도 높이 평가됐다.

북부선(안변~포항),중부선(포항~경주),남부선(울산~부산) 등 세 노선으로 구성된 동해선 중 남부선은 완공돼 기존의 경동선과 연결되면서 부산~포항 구간이 완전히 개통됐지만 동해북부선의 나머지 구간은 8·15 광복으로 완공하지 못했고,동해북부선 안변에서 양양까지 운행됐던 철로는 한국전쟁 이후 휴전선 이남지역은 모두 철거됐다.김광섭 고성문화원 연구원은 “동해선은 일본의 경제적,군사적인 수탈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견해도 있지만,동해안에 바짝 붙어 주행하는 동해북부선은 실질적으로는 금강관 관광을 목적으로 했다”며 “금강산전기철도와 동해북부선이 개통된 1930년대 내외금강 관광이 편리해짐에 따라 고성지역은 금강산 관광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이어 “오랜 염원을 풀고 우리지역에 힘차게 달리던 기차처럼 동해북부선이 개통돼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한 고성지역의 경제적 발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녹슨 철길 단 한번 시험 운행 후 방치되다시피 한 남한 최북한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안에 있는 제진역의 녹슨 철로, 특별취재반/박상동
녹슨 철길 단 한번 시험 운행 후 방치되다시피 한 남한 최북한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안에 있는 제진역의 녹슨 철로, 특별취재반/박상동

 

■ 1920~1930년대 금강산 관광객수

동해북부선이 만들어진 1929년을 기점으로 1938년까지의 금강산 주변의 동해북부선 주요 지역 하차인원을 보면 점점 인원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이는 동해안을 따라 발달된 관광지인 외금강,해금강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금강산 관광객이 급증한 것은 일제강점기 금강산 관광로가 동해북부선 철도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1920년 경원선을 이용한 경우 원산에서 선박을 통해 장전항으로 연결됐고,1930년대 동해북부선을 이용할 경우 온정리 외금강역에서 하차했다.따라서 관광의 중심점은 자연스레 북부지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동해북부선이 외금강까지 가는 길이 1932년 완성되자 외금강,해금강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등 1930년대 접어들면서 온정리가 외금강 관광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발전하게 됐다.

■ 동해북부선의 흔적 ‘북천철교(北川鐵橋)’

북천철교는 1930년경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원산(안변)~양양간 놓았던 동해북부선의 철교다.고성군 간성읍 봉호리에 위치해 있다.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이 철교를 이용해 군수물자를 운반하자 아군이 함포사격으로 폭파했다.이후 60년이 넘도록 다리발(교각)만 황량하게 방치돼 있었으나 지난 2011년 고성군이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폐철각을 기증받아 철각을 리모델링 하고 상판을 설치,북천철교를 걷기·자전거 마니아들을 위한 전용교량으로 재탄생시켰다.

취재진이 찾아간 북천철교 하부에 있는 폐철각에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포탄자국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취재진과 동행한 주민 신현필(86)씨는 북천철교를 가리키며 “고성지역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동해북부선의 흔적”이라며 “한국전쟁 당시 파괴됐지만,이 다리 위로 동해북부선 열차가 달렸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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