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드러낸 극단적 목소리는 공감받기 어려워
남성 누드모델 몰카사건
서울서 대규모 여성 시위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
'재기해' 등 급진적 표현 논란
여성들 조차 '혐오 논리' 외면
성평등 실현 남성 지지도 필요

▲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 대해 경찰이 편파수사를 한다며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연합뉴스
▲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 대해 경찰이 편파수사를 한다며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주말,서울 혜화역 부근에서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주최측 추산 6만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였다.홍대 남성 누드모델사진 유출사건이 일으킨 나비효과는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다.물론,이 현상은 우연하게 발생된 것은 아니다.남성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미투(me too)라는 세계적인 분위기 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가,한 사건을 기점으로 폭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이 현상을 글로 써보겠다고 생각하니,주제의 난해함을 넘어서는 망설임이 느껴졌다.처음 이 시위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그간 억눌리고 고통 받았던 여성들이 대규모로 모인 이번 집회를 보니 감격스러웠다.그러나 이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감격은 매우 복잡한 감정으로 번져나갔다.필자는 이 집회의 참가 자격으로 규정된 ‘생물학적 여성’이기는 하지만 참여 의지는 오히려 약해졌다.

생물학적 여성,생물학적 남성이라는 표현은 세상에 두 개의 성(性)만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의 용어가 선택된 이유를 살펴보면,우리 사회에서 있었던 성정체성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생물학적 성별(sex)와 사회적 성별(gender)에 대한 논의와 용인이 이루어지고 있는 맥락에서 보자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표현은 또 다른 차별성을 내포하게 된다.문제는 그 어떤 사람도 여성이나 남성으로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고,‘생물학적 여성’ 밖으로 밀려난 다른 성(性)은 철저히 타자가 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지울 수 없다.

피켓 위에 선명하게 쓰인 ‘주혁하라’ ‘재기하라’라는 구호를 보고 있자니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이 시위가 양성평등의 가치를 넘어서 남성혐오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번 시위의 목적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면 매우 성공적이지만,양성평등을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한 듯싶다.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은 폭넓은 사회적 공감이다.매주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이어지는 수요집회,남녀노소가 촛불을 들고 운집했던 광화문의 촛불집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폭넓은 공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서로 다른 개인들은 때로 분노했고 때로는 비판했다.분노와 비판은 ‘재기하라’와 같은 급진적 용어가 아니라,풍자와 유머로 표현되었다.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집회에 참여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용인될 수 있었던 수준이었던 것이다.

물론,개인이나 집단,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고,표현의 방식은 ‘표현의 자유’라는 개인의 권리로 폭넓게 용인된다.풍자나 비판의 정도에는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이번 시위에서 있었던 급진적 표현과 방식이 연일 논란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생물학적 여성’들에게서조차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일베 관련 사건들을 떠올려 보면,혜화동 여성시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좀더 이해할 수 있다.일베는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하여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극우 성향의 유저들이다.우리 사회가 남성중심의 사회라고는 하지만,일베는 남성들에게서조차 외면받는 집단이다.일베 유저라는 것이 밝혀지면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고,일베유저라는 것이 밝혀지면 때로 직업을 박탈당하기도 한다.본인 입장에서 부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더라도,사회에서는 그것을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떳떳하게 자신을 일베라고 밝히는 사람도 없어서,흔히 일베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일베가 받는 이런 대우는 그들이 남성이기 때문이 아니다.마찬가지로 이번 혜화동 여성시위를 바라보는 우려는 집회의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재기하라’,‘주혁하라’는 극단적 외침은 공감받기 어렵다.(이런 표현의 사용이 사람들의 시선만을 끌 의도였다면 그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다!) 극단적인 혐오논리와 표현은 사회적 공감,공동체의 지지를 얻어내기 부족해 보인다.양성평등,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진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지지와 노력도 필요하다.양성평등을 바라는 것이 여성들뿐이겠는가? 양성평등/성평등을 열망하는 사람들(남성과 여성,그 외의 모든 성별을 포함하여)의 노력과 응원이야말로 보다 견고한 성평등의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번 집회에 내걸린 구호다.세상을 바꾸기 위해 주말을 반납한 여성들 덕분에 사회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고,우리 사회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도 기대한다.다만,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련의 현실을 보면서 기꺼이 불편한 용기를 기꺼이 내준 여성들에게 이런 불편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불편하다.

>>> 유강하 교수

연세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신화)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고전 다시쓰기와 문화 리텔링’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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