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육체는 얼마나 많은 부속품으로 되어있는가.어떤 학자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했던가.어느 하나가 잘못되어도 비상이 걸린다.병원을 찾게 된다.마치 자동차가 어느 부속품이 하나 고장 나면 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암병원에 들어서니 너무도 많은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병과의 싸움이 인생인가.인간은 삶과 죽음의 자웅동체다.암을 정복한다고 하면서도 아직 그 길은 멀기만 하다.
구로 고대병원 암병실 7273병실.5인실이다.한마디로 이 방은 병실이 아니라 노령의 환자들이 스쳐간 신혼여행을 추억하고 반추하는 ‘추억의 방’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요단을 건너는 마지막 대합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창문 밖으로 지는 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어느 시인은 ‘문채가 아름다운 신혼방’이라고 했다.그 표현도 수긍이 간다.노년에 덤으로 받은 아름다운 방.누구도 이 방에 들어오면 살아온 생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남을 얼마나 배려하고 사랑했던가.재물과 명예에 연연하고 패랭이꽃의 낮은 자리에 눈을 주지도 않았으며 키 큰 해바라기가 되려고 남에게 머리 숙이고 아부하지 않았던가.
내 맞은편 환자는 78세 노인.간병인은 55세의 딸이다.나는 이 방에서 딸이 보여주는 사랑의 꽃을 보았다.감명 그 자체였다.식사가 나오면 딸이 밥을 먹여준다.늘 웃음이다.하지만 아버지는 신경질뿐이다.거슬리면 버럭 소리도 지른다.하지만 딸은 아버지를 늘 웃기려고 한다.그리고 웃음이 넘친다.식사가 끝나면 아버지의 이빨 칫솔질을 해준다.소 대변을 받아내 준다.뿐이겠는가.수건을 물에 적셔 빨아 등을 씻어주고 가슴도 씻어준다.때때로 과일도 깎아준다.이 감동적인 사랑의 꽃을 보면서 효녀 심청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세상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우리가 모르는 곳에 아름다운 꽃이 또 피고 있을 것이다.이 딸의 사랑으로 암이란 괴물이 물러가 주기를 나도 마음속으로 기도드렸다.어떤 기적이 꼭 일어날 것 같은 암병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