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일곱의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주인공 여자는 절망과 방황의 끝에 첫사랑을 만난다.죽음을 앞둔 처지에 어떤 형태의 인간관계도 맺을 의사가 없음을 밝히려고 했지만,첫사랑 남자는 오히려 청혼한다.급작스런 청혼을 받은 여자는 자기도 살아서 사람 체온이 닿는 곳에서 살고 싶어졌지만,이내 자신의 증세를 털어놓으며 그 남자의 가슴에 머리는 파묻는다.그러나 ‘죽음’은 나누어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남자는 통곡 대신 심장으로 끝없는 절벽(絶壁)을 더듬을 뿐이었다” 한국 현대 여류 소설가 강신재가 1959년에 쓴 단편 ‘절벽’의 줄거리다.

일반적으로 절벽은 바위가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를 이른다.하지만 절벽은 이 외에도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아예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그리고 강신재의 소설처럼 앞을 가릴 수 없는 깜깜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하여간 절벽은 매우 급박한 위기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구절벽’이란 말이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됐다.저출산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또 오랜 경기침체는 ‘소득절벽’을 낳았고,실질 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됐다.‘소비절벽’의 탄생 배경이다.전반적인 경기침체는 바로 ‘고용절벽’ ‘일자리 절벽’을 불러왔고,초고령사회는 정부의 복지부담의 가중을 불러오면서 ‘재정절벽’이란 말을 탄생시켰다.여기에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노동제한은 노·사·정간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벼랑끝 대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그야말로 절벽의 시대다.

마침 지인이 보내온 정호승 시인의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란 시는 절벽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저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중략)/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시인은 절벽의 막막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말라고 위로한다.사람은 누구나 기어이 올라가고 내려와야 하는 ‘절벽’이 있다고.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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