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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유쾌한 먹방 뒤에 가려진 잔혹함

이미지가 저울질하는 개와 낙지의 목숨 값
여름철 단골 논쟁거리 ‘개고기’
동물단체, 식용동물과 차별화
차별성보다 인식과정 통찰해야
개, 반려동물 이미지 매체 형성
돼지·닭, 음식 방송 단순 재료
제조과정 노출 ‘생명경시’ 우려

박창현 2018년 07월 28일 토요일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논쟁거리가 되는 문제가 있다.바로 ‘개고기’ 논쟁이다.인류의 가장 오랜 벗인 개를 더 이상 먹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개고기는 우리의 식문화 가운데 하나이므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논리가 팽팽히 맞선다.보신탕 애호가들과 동물보호단체의 싸움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개를 식용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이유를 백 가지쯤 찾을 수 있다면,개를 절대로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도 백 가지쯤 찾을 수 있을 것이다.아직 복날(말복)이 한번 더 남아 있으니,개고기를 둘러싼 토론과 싸움은 당분간 치열하게 진행될 것 같다.

이런 토론을 보고 있자면,식용으로 쓰이는 다른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소,돼지,닭이 바로 그들이다.그들은 소,돼지,닭이라는 이름 대신 갈비,삼겹살,치킨으로 호명된다.그들은 죽은 후에야 사람들을 만나고,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풀밭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한갓지게 모로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돼지,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모이를 쪼아 먹는 닭은 동화책이나 우리의 이미지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문재인 대통령 반려견 ‘토리’가 절기상 초복인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개식용 반대 및 입양 독려 집회에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 반려견 ‘토리’가 절기상 초복인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개식용 반대 및 입양 독려 집회에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인간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태어난 동물은 없다.동물보호단체에서는 개와 다른 동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만,이 논리는 어쩌면 다른 동물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우리가 생각 없고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돼지는 실제로는 매우 지적이고 예민하며,청결에 신경 쓰는 동물이다.돼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많은 동물들은 우리 인간의 선입관과 달리,모두 그들만의 개성과 의외성을 갖고 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개가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의 문제가 아니라,각각의 동물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개와 다른 동물과의 차이는 어쩌면 정보량과 부단히 노출되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대개 개는 이름이 있고,샴푸로 목욕하고 개껌과 다양한 간식이 준비되어 있으며,양치질로 치아가 관리된다.이러한 개들은 가족으로 당당히 받아들여진다.‘반려동물’은 그들을 위해 준비된 용어이다.반면 소,닭,돼지는 그런 지위를 누려본 적이 거의 없다.개와 관련된 프로그램은 주인과 개의 화해 프로그램,문제견의 행동교정 프로그램(행동교정 프로그램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도 많다)이 대부분이다.개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전문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소,닭,돼지와 관련된 전문가는 대개 미식가 또는 셰프이고,관련 프로그램의 주제 또한 매우 다르다.“그들의 ‘고기’를 어떻게 하면 더 신선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텔레비전에서는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 되고,유명 셰프들은 고기의 선홍빛과 마블링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쏟아놓는다.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각각의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우리 사회에서 넓게 용인되는 동물에 대한 인식을 확인하게 된다.소,돼지,닭이 살아있는 동안 ‘육고기’가 아닌 반려동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정말 희귀한 일이다.그래서 반려돼지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되고 반려소는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Youtube의 한 수산물 채널에서 낙지탕탕이 조리과정을 업로드해  보여주고 있다. 동영상 캡쳐
▲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Youtube의 한 수산물 채널에서 낙지탕탕이 조리과정을 업로드해 보여주고 있다. 동영상 캡쳐
그런데 가끔은 소,돼지,닭이 그나마 형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바다 생물과 비교했을 때 하는 말이다.돼지가 주로 삼겹살로 호명되듯,바다 생물은 해산물로 호명된다.그들은 대개 건강한 물고기가 아니라 신선하고 싱싱한 재료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낚싯바늘에 꿰여 수십 미터를 끌려온 물고기가 건져 올려지는 순간 사람들은 환호하고,그 장면 아래로는 ‘경축’ ‘월척’ 등 큰 글씨의 자막이 따라 붙는다.나는 오랜 시간동안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에 불과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들었고 그렇게 알아왔다.하지만 어류생물학자인 빅토리아 브레이스웨이트에 따르면 물고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피터 싱어-더 나은 세상) 월척이나 만선의 기쁨 뒤에는 촘촘한 그물과 물고기 더미에서 질식해서 죽어가는 물고기의 비참한 현실이 가려져 있다.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동물보호협회 회원도 아니다.하지만 꿈틀대는 낙지의 몸을 ‘탕탕’ 경쾌한 칼질 소리로 난도질당해 접시에 담겨지는 조리과정(접시에 담겨서도 낙지의 몸은 여전히 꿈틀댄다.심지어 이 요리의 이름은 ‘낙지탕탕이’,죽는 과정을 그대로 묘사한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살아있는 새우가 소금을 뒤집어 쓴 채 투명한 냄비 안에서 아우성치며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물고기가 제 살이 발라지는 순간에도 몸을 뒤틀려 입을 뻐끔거리는 것,살아있는 게의 다리를 떼고 간장 속에 담그는 과정을 보는 건 참으로 고역이다.‘쫄깃한 식감’ ‘입 안 가득 퍼지는 바다의 향’이라는 감탄과 수식어도 그 과정을 포장하기는 어렵다.이것 또한 우리 식문화의 일부이기는 하지만,그걸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마주할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그냥 궁금했다.유기견이나 유기묘를 구하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동시에,유쾌한 칼질 소리에 바다 생물들의 신체가 절단되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시켜도 괜찮은지 말이다.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물을 그대로 씹어 삼키는 걸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면서,‘생명경시’ 풍조를 걱정하는 게 정말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닌지 말이다.


>>> 유강하 교수

연세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신화)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고전 다시쓰기와 문화 리텔링’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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