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성 변호사
▲ 박찬성 변호사
한 해의 절반이 훌쩍 지났다.올 상반기의 키워드라면 ‘#미투’를 빼놓을 수 없다.조금은 뜸해진 느낌이지만,그래도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성폭력 뉴스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지금과 단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분노 어린 피해자들의 호소에 언젠가 또 다시 직면하게 되는 일이 없으려면 이번 #미투를 뼈저린 자성과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희롱·성폭력 관련 심포지엄에 가면 ‘이번을 끝으로 더는 이 문제에 관한 고민이 필요 없게 되는 날이 오게 되길 바란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그런 날이 과연 올까? 경찰·검찰이 하루도 빠짐없이 범죄 척결을 위해 분투하지만,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단 한 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을,그런 놀라운 하루가 찾아오게 될까? 정말로 기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그런 일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꾸준한 노력 자체는 매우 소중하다.하지만 그런 노력만으로 모든 문제가 실제로도 근절되리라 믿는 것은 순진하다.이런 잘못된 생각은 오히려 이 문제에 어느 샌가 눈을 감아버리고 귀를 닫아버리게 만들 공산이 크기에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암울한 전망이지만 #미투 이후에도 곳곳에서는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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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최선은 성희롱·성폭력이 언젠가 사라지리라는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는 것이 될 수 없다.사안이 또 다시 발생했을 때에 신속하고 기민하게,그리고 적절하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는 응보적 조치를 엄정하고 명확하게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도적 방책을 확고하게 마련해 두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며 최선일 것이다.피해자의 즉각적인 문제제기를 가로막아 온 가장 주된 요인은 문제제기 이후의 2차피해에 대한 우려였다.국가적 차원에서는 어디까지를 2차피해로 볼 것인지,2차피해 유발자에 대하여는 어느 만큼의 엄정한 제재를 가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극히 최근에 이르러서야 남녀고용평등법과 장애인복지법에 2차피해의 구체적 예시를 들고 있는 새 조항이 생겼고 이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두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다른 한 편으로,법제화만이 2차피해 예방의 전부일 수는 없다.인식개선과 실천을 위한 의지가 필요하다.제도를 아무리 잘 고쳐놓았더라도 우리의 의식과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사회적 차원,우리 지역의 차원에서는 어쩌면 이 부분의 변화가 더욱 더 중요할 수 있다.성희롱·성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가해자의 탓이요 책임이라는 것,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에게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부담을 가하는 행위는 모두 2차피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깊이 숙지하여야 한다.주변인으로서는 가해 우려가 있는 행위를 목격한다면 사전에 적극 제지하여야 할 것이다.피해가 이미 발생하게 된 때라면 피해자가 원할 때는 충분하고 성실한 조력 제공을 하는 것이,그리고 피해자가 원치 않는 때라면 사건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 대지 말고 조용히 침묵을 지켜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성희롱·성폭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피해자가 부적절한 처리와 대응,주변의 그릇된 시선으로 인한 아픔의 눈물을 더 이상 흘리지 않아도 좋을,그런 날은 언젠가 분명히 우리에게 올 수 있다.이는 오직 우리의 노력과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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