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서 잉태된 예술적 상상
산과함께전-길 위의 리얼리즘을 관람하며
미술가 예술작업 통해 현실참여
역사 통해 영감받아 상상력 펼쳐
발해 옛땅서 민족의 자취 더듬어

▲ 김용철 작 ‘고구려의 하늘과 땅’(180x180cm, 종이, 2018)
▲ 김용철 작 ‘고구려의 하늘과 땅’(180x180cm, 종이, 2018)
‘산과함께’는 강원을 뜻하는 산(山)이 들어가 있는 미술단체 이름이다.영화 ‘신과함께’가 나와 놀라기도 했다.2015년부터 썼던 이름이라 카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영화 원작이 2012년에 만들어진 웹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아무튼 서로 전혀 모르고 쓴 이름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미술단체가 몇 년째 ‘역사’에 관한 전시를 열고 있다.역사 전시를 한다 해서 역사를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다.새로운 사실을 제시할 역량이나 전문성이 있는가 문제와도 별개의 일이다.작가들이 역사를 통해 어떤 영감을 받고 예술가로서의 상상력을 펼칠 것인가의 문제다.누구나 역사에서 배워야함은 물론이다.글을 쓰는 작가가 역사에서 배우고 글을 쓰는 것과 오늘의 강원 작가들이 역사를 통해 배우고 미술로 풀어내는 일의 방식은 같다.독자로서 역사를 읽어 내거나 예술가로서 영감을 얻는 것이 이 전시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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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영 작 ‘백두산 일송정 해란강은’(227x162cm, 아크릴, 2017)
고고한 예술의 피안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발 딛고 생각하는 미술이 작가들이 펼치려는 예술이다.때로는 강렬한 조형적 표현으로,때로는 정교한 현실세계의 재현으로 작업하려 한다.당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현실참여를 표출하는 것에도 주저함 없이 역할을 자처했다.2016년 촛불이 번져가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춘천에서의 ‘순실뎐(展)’은 의미 깊은 것이 아닐 수가 없다.TV와 라디오에서 이 전시 보도가 쉴 새 없이 이뤄졌다.그 즈음 춘천에서의 촛불집회에도 1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다.철옹성처럼 움직이지 않던 강원지역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였다.전국 어디에도 없던 본격적인 전시가 그 때 열렸다는 사실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에 앞서 광복 70주년인 2015년 강원지역에서도 의식있는 작품과 작가로 전시 활동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다.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을 가득 메울 수 있는 작품으로 참여자들이 비용을 모아 60여 쪽의 도록을 만들고 첫 전시를 열었다.‘산과함께,70-미술에 담은 우리 강원’(11.25 ~ 30)을 주제로 처음 힘을 모았다.강한 이미지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는 작가들이 중심이 되었을 뿐,민미협과 미협뿐만 아니라 이런 단체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작가들도 없지 않았다.

역사를 주제로 한 일련의 전시는 춘천문화재단 기획전(2016.7.13~ 25)이 추진력이 되었다.춘천에서의 기획전이었던 만큼 오늘의 춘천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소재를 ‘강렬하고 리얼하게’ 다룰 수 있는 작가들을 초대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미술관이 담을 수 있는 전시와 같이 다양한 부대행사도 함께 열었다.우리 역사의 물꼬를 돌려놓은 것으로,독립 운동가이자 역사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있다.그가 그토록 중시한 고조선만 보더라도 지금의 한반도 중심 세계관은 한계가 분명했다.연암 박지원이 압록강을 넘어 목 놓아 울만한 곳이라 했을 만큼 끝없는 요동 벌과 백두산 북쪽의 만주와 멀리 시베리아가 우리 역사의 장이 되었음은,이제 우리가 고조선,북부여,고구려,발해를 통해서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우리의 DNA에 새겨진 문화가 한반도에 국한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곳,멀리 그곳에는 바이칼이 있었다.성황당 주변에서 자주 보았던 샤머니즘의 흔적은 지금도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7년에는 고구려 유적을 확인했다.주몽이 개국한 웅장한 오녀산성을 비롯해 광개토왕비와 왕릉이 있는 국내성터,백두산을 비롯한 고구려의 기상이 펼쳐진 곳을 작가의 가슴으로 담았다.그리고 올해는 지난 1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산과함께전-길 위의 리얼리즘’을 열어 고려역사가들 이후 우리 역사에서 한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발해의 옛 땅을 보여준다.지금의 중국 화룡시에 있는 발해 중경성을 중심으로 백두산에 이르는 길에서 만난 독립투쟁의 현장들은 고려시대의 발해뿐만 아니라 근대의 독립활동까지 우리 역사를 현장으로 만나게 해주었다.지금도 강 건너 보이는 북한 땅을 중국공안의 삼엄한 감시아래 바라보아야 하는 민족 비극의 현장은 한반도 접경의 중국에서 또한 늘 펼쳐지고 있는 풍경이다.그 역사의 현장과 작가의 감성과 상상력이 만나 만들어진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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