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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침묵이 지겹다

이 광 식 논설위원

2003년 05월 19일 월요일
 계절의 여왕인 5월. 요즘 도처에서 동창회 모임이 활발하다. 동창회원들이 모교의 교정에 모여 체육대회를 열며 친목과 모교 발전을 위해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동안 못 만나던 때에 한 입 가득 괴어 놓았던, 저마다 생긴 얼굴대로의 갖가지 소리와 의견과 주장들을 쏟아내느라 모교 운동장은 그야말로 음식이 흔전만전한 잔칫집 마당 모양 흥겨움으로 가득 찼다.
 공교롭게도 쉬는 날이라 동창회 체육대회가 열리는 모교 운동장을 찾은 게 잘못이었던가. 나는 그만 빗발치는 질문 공세에 혼쭐나고 말았다. 고교평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의 의견은 뭔가? 아니, 이미 의견을 읽었는데, 진정한 그대의 속내는 뭐냐? 그게 진심인가? 방송용 아니, 신문 편집용 견해 아닌가? 고교평준화 찬성 50.1% 반대 49.9%쯤 되는 그대의 논조는 양비 혹은 양시로서 차라리 의견이랄 수 없는 것 아니었나?
 나는 우정어린 동창들의 질문에 원칙적인 방향을 답하는 걸로 당혹스런 몇 시간을 떼우고 말았다. 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진보와 보수의 거센 충돌 한복판에서 스스로 중심 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힘이 곧 정의라 믿는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서버티브) 세력의 지원 아래 조지 W 부시가 악의 축을 제거하려 할 때 진보 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의구심을 씻어내려고' 애쓴 것처럼 말이다.
 고교평준화 문제는 차라리 딜레마다. 아니, 벗고 싶은 시대의 덫이다. 씹어 넘길 수도 없고 뱉어 버릴 수도 없는 교육 현장의 계륵이요 난제요 고뇌요 번민이다. 미래를 결정지을 교육 문제를 이웃집 푸닥거리 구경하듯 할 수도 없다. 세계의 일부가 보수로 우향우 할 때 우리는 반대로 좌향좌 하고 있는 건지, 이 와중에 교육계의 어정쩡한 자세가 슬기로운 건지 교활한 건지, 그런 자세를 통매하는 목소리가 정의로운지 아닌지 고민에 싸여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당국 역시 밤을 도와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도교육청 관계자들의 우묵한 볼에서, 핏발 선 눈에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빛에서, 국사를 위해 바치는 몸짓에서 공복의 고충을 아니 느낄 수 없다.
 그야말로 국궁진췌다. 평준화 추진 여부를 일단 신뢰할 만한 기관의 연구 결과를 보고 그 때 다시 논의해 보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뭔가 초조하다. 공적 담론을 벌릴 기세인 평준화추진위의 대중성 확보 전략이 또 뭔가 수세에 몰리게 만든다. 어디 우군은 없는가? 좌고우면하는 당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함을 느껴가고 있다.
 나는 팽팽한 긴장의 터널을 지나는 지금 이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또는 이념의 보수성과 삶의 진보성, 그 뒤죽박죽 사이에서 갈 길 몰라 헤매는 스스로를 책하며 암중모색 중이라 믿어지지만 명쾌한 답이 찾아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교육계의 그 잘난 수구 기득권 세력은 다 어딜 갔는가? 이들의 주된 전술인 수동성과 힘에로의 지향성이 지금 동시에 작동되는 중인가? 아니라고? 아니라면 당국에만 맡기지 말고 무슨 대안을 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내가 진실로 문제삼고 싶은 것은, 보수 성향의 교육 전문가들, 선배 교육자들, 교육계 원로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왜 공개적으로 고교평준화가 옳지 않다고 당당하게, 철학적으로, 소신 있게 주장하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토론의 광장으로 나아가 흔들림 없는 입론을 펴려고 하지 않는가. 토론할 자신이 없는가? 그렇게 무소신했던가? 어느 쪽으로 결판나든 중요한 정책이 공개적 토론 하나 없이 추진돼도 좋다는 것인가?
 고교평준화추진위가 뚜렷한 소신과 확고한 신념을 펼칠 때, 이들의 쥐죽은듯한 침묵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의심스럽고 수상한 침묵의 카르텔이 나는 정말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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