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다.일이 잘 풀릴 때는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급전직하 곤란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하지만 내일 일을 알 수 없어 허둥댄다.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려고 애를 쓴다.온갖 수단을 동원해 내일을 예측하고 자신의 운명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개인의 일이 그러하고 나라의 일이 그러하고 세상이 맞물려 돌아가는 일이 모두 그러하다.

사람들은 그 불가예측성을 줄이려고 마지막으로 점술 같은 것에 매달린다.과학적·합리적 예측이 한계에 직면했을 때 마지막으로 의탁하는 곳이다.논리를 뛰어 넘는 그 무엇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당장 올 여름의 무더위만 해도 그렇다.대체로 중장기 기상전망이 가능하지만 자연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그 불가예측성이 오히려 자연과 인간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정치의 세계 또한 마찬가지다.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오늘의 동지가 내일 적이 될지도 모른다.그래서 오늘의 적은 내일 동지가 될 것처럼,오늘의 동지는 내일의 적이 될 것처럼 대하라는 말이 있다.정치의 세계를 작동하는 동력은 바로 각자,혹은 각 정파 이해관계가 될 것이다.그 차이와 간극이 정치의 에너지를 만들고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충돌직전까지 갔던 한반도 정세가 최근 대화국면을 이어간다.당장 큰 결실을 볼 것 같았던 관계가 지루한 기 싸움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큰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 끝을 예단하기 어렵다.다만 지도자의 언행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좋은 시사점이 될 것이다.서경(書經) ‘열명(說命)’ 편에 은(殷)나라 무정(武丁)임금과 재상 부열(傅說)이 나눈 대화가 등장하는데,지도자의 덕목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입은 부끄러운 일을 생기게 하고,갑옷과 투구는 전쟁을 부르고,옷은 장농속에 간직하고,방패와 창은 자신을 살핀 후 써야 한다(惟口起羞 惟甲胄起戎 惟衣裳在司 惟干戈省厥躬)”는 대목이다.곧 입을 조심하고,군비를 함부로 말고,벼슬을 헤프게 내리지 말고,전쟁을 함부로 않는 것 이 네 가지를 경계하면 잘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지금 지도자들을 이 기준에 비춰보면 안개가 좀 걷힐지 모르겠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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