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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역사 논쟁은 삼가야

김정인 2018년 08월 21일 화요일
▲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광복절을 맞아 다시 건국절 논쟁이 불거졌다.쟁점은 건국 기점이다.‘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이 부딪혔다.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중에는 1919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반면 뉴라이트 학자를 포함한 사회과학자들은 1948년 건국론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다.

1919년 건국론자들은 1919년 4월 11일에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임시헌장을 통해 국민·주권·영토 등 국가의 3요소를 규정했으므로 국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1948년 건국론자들은 임시정부가 국가로서 필수적인 구성 요소들을 실질적으로 갖추지 못했고 다른 국가로부터 승인받지 못했으므로 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명실상부한 주권을 되찾고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1919년 건국론자들은 임시의정원 의원을 선거로 선출함으로써 국민 주권의 형식을 갖추었으며 연합국들이 전략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반박한다.1919년 건국론자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반면 1948년 건국론자들은 국가체제의 완성이라는 형식을 중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을 절충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는 역사학자나 사회과학자들도 있다.어느 국가나 민족이든 건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며 ‘1919년에 건국을 시작했고 1948년에 건국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대한민국 건국은 망명지의 임시정부에서 50%가 이뤄지고 나라를 되찾은 후 정부 수립으로 90%가 됐다.부족했던 나머지 10%는 통일이 되면 채워질 것이다.’라며 통일이 되어야 건국이 완성된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도 있다.

역사 논쟁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1948년으로 일단 돌아가 보자.이승만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이라는 문구를 제헌헌법 전문에 넣은 일을 주도했다.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는데도 영향을 끼쳤다.하지만 스스로 1948년에 건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1948년 8월 15일에 건국이라는 해석이 덧붙여진 것이다.다시 말해 건국 시점을 둘러싼 논쟁은 사실보다는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 가깝다.임시정부 지도자들이 1919년 건국론자들의 주장처럼 1919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했으며 이후 국가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라 인식했는지 아니면 1948년 건국론자들의 주장처럼 건국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독립운동을 한다고 인식했는지는 아직 사실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편에서는 건국절 논쟁 자체가 위험한 논쟁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다.그들은 1919년 건국이든,1948년 건국이든 둘 다 민족사의 단절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시한다.고조선 이래 민족사가 간단없이 이어져왔고 일본에 의해 36년간 잠시 강탈되었으나 곧 광복을 이루었다는 역사인식을 갖고 계승성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1919년 혹은 1948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곧 1910년부터 1919년까지,혹은 1910년부터 1948년까지의 민족사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그럴 경우 그 기간 동안 독도는 누구의 땅이 되는가? 일본과의 영토 갈등에서 건국절 논쟁은 일본의 억지 주장을 합리화해주는 무기가 될 수 있다.역사 논쟁은 필요하다.하지만 국내적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그 파장이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면 삼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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