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할머니의 배움에 대한 열망, 삶이 되고 글로 남았다
환갑 넘긴 1987년 일상 기록 시작
자연 속의 삶의 애환 소소히 담아
배우고자 하는 사람 위해 책 출간
독자펀딩 목표액 5배 넘게 모아
연륜서 나오는 지혜 깊은 울림줘

이옥남 할머니
▲ 열일곱에 송천리 떡마을로 시집 온 이옥남 할머니는 바쁜 시집살이에 글쓰기가 힘들었다.환갑을 훌쩍 넘긴 1987년에서야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자연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며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글들은 일기라기보다는 시가 됐다.

이옥남 할머니
이옥남 할머니
한살 한살 나이를 더해 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 만큼의 지혜와 연륜도 쌓여 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언제부턴가 삶의 지혜와 연륜이 새로운 전문지식과 기술에 밀려나는 세태가 됐지만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평범한 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된다.

1922년 태어난 이옥남 할머니는 배워야 할 어린 시절에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글씨가 쓰고 싶은데 뭐이 있어야 쓰지요,부엌에서 불때민(불 때면서) 재긁어 놓고 ‘가’자 써보고 ‘나’자 써보고 이렇게 배웠어요.”

열일곱에 지금 살고 있는 송천리 떡마을로 시집온 할머니는 바쁜 시집살이에 글쓰기가 힘들었다.남편과 시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나서야 도라지와 더덕 등 산나물을 장에 내다 팔아 공책을 사 글씨 연습을 했고,환갑을 훌쩍 넘긴 1987년에서야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자연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며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글들은 일기라기보다는 시가 됐다.

이옥남 할머니 작 ‘아흔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이옥남 할머니 작 ‘아흔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투둑새 소리,매미소리에 맴(마음)이 설레고 매미가 빨리 짐(김)매라고 ‘맴맴맴맴‘ 어찌나 허리를 빨리 잘도 놀리는지 ‘재주도 좋다’하는 생각이 든다.나는 입으로도 그렇게 재빨리 못하겠는데 허리로 재빠르게 ‘꼬불랑 꼬불랑’하며 소리를 내는지.매미야 나도 너처럼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늙은이가 필십이나 넘겨 먹어 젊은사람한테 ‘사시요 사시요’하니 부끄럽다.그래도 애써 가꾼 생각하고 운전운전 다닌다.강낭콩이 잘 열어서 다 먹게 된 것이 날마다 비만 오니 자꾸 싹이 나싸서 보기가 딱해서 할 수 없이 내 자신을 욕하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팔러 다닌다.”

▲ 97세 나이에도 독서를 즐기는 이옥남 할머니.
▲ 97세 나이에도 독서를 즐기는 이옥남 할머니.

일기에는 할머니가 바라본 새소리와 매미소리 등 시골의 자연과 마을주민의 소소한 이야기가 풍경화처럼 그려졌다.손자인 탁동철 교사는 학생과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평생 공부한다”라는 사례를 들기 위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이 소식을 접한 출판사는 책 출간을 위해 150만원을 목표로 독자펀딩에 나섰고,목표액을 달성하자 책으로 발간했다.독자펀딩은 당초 목표한 금액의 다섯배인 750만원을 넘어섰으며,펀딩 참여자 80% 이상이 여성이라고 한다.순수하게 배우자는 열망에서 시작해 책을 발간하기까지 할머니가 성취한 삶이 어쩌면 이 시대 여성들에게도 가슴 깊은 울림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돈복이 전화받아라’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뛰어가 받았다.할 말도 많건만 왠지 전화기만 들면 말문이 막혀 버리니 하고픈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끝나고 만다.타관 객지에 있는 돈복이는 고향이 그립겠지만 엄마는 자식들이 늘 그립다.언제나 늘 곁에 두고 보고 싶건만,그 원수놈의 돈이 무엇인지 생활에 쫓기다 보니 늘 그립고 보고싶다.서산에 해는 지고 어둠이 깔리는구나.”자연과 생명을 귀하게 대하고 자식과 이웃을 정성스럽게 맞이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하루하루의 기록.‘아흔 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속 ‘추천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당신의 그 하루가,우리에겐 백 년의 지혜입니다.” 최 훈 choihoon@kado.net

▲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옥남 할머니.
▲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옥남 할머니.
▲ 이옥남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일기장.
▲ 이옥남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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