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졌고 잿더미만 남았다.1만2000년 전 여성인 ‘루지아’도 흔적 없이 자취를 감췄다.지난 2일 리우데자네이루 소재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불타면서 전 세계 지식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렸다’고 탄식했다.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미셰우 테메르 브라질대통령은 “200년 넘은 연구물과 지식이 다 사라졌다.브라질 국민에게 비통한 날”이라고 했다.그의 말처럼 이번 화재로 소실된 유물은 2만여 점.세계 최대 자연사 박물관의 소멸이었다.

박물관 건물은 그 자체가 ‘역사’였다.1808년 포르투갈 여왕 마리아 1세가 당시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건너와 궁궐로 사용하다 1818년 박물관으로 전환했다.이 박물관엔 1500년 포르투갈 원정대의 브라질 상륙에서부터 1889년 공화정 수립 때까지의 역사·자연 유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브라질 토착어를 기록해 둔 텍스트와 음향 자료,공룡 뼈,이집트의 석관 등 대부분이 값어치를 따지기 어려운 유물이었다고.“가격을 매길 수 없는 큰 손실”이라고 한 파울로 크누스 박물관장의 말 그대로다.

브라질 신문 오글로부는 “일요일의 비극은 일종의 국가적 자살이다.그리고 과거와 미래세대에 대한 범죄다”고 했다.어리석고 미숙한 대처가 인류의 역사·과학·문화적 DNA를 무참히 파괴했다는 지적.외신들 또한 “브라질의 가장 오래됐고,역사·과학 박물관 중 가장 중요한 박물관이 불탄 것은 예산 삭감과 부적절한 유지·보수 때문”이라고 했다.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는 가슴 뜨끔한 지적이다.

2008년 2월 10일 일요일 오후 8시50분을 기억해 보라.10년 전 그날,우리는 국보1호 숭례문이 벌겋게 불타오르던 모습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봤다.브라질 국민들도 당시 우리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숭례문 소실 이후에도 문화유산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태도는 여전히 무디다.매장문화재를 아무렇지 않게 파헤치고,선조들의 DNA가 박힌 유물을 하찮게 취급한다.과거와 미래를 부정하는 행위다.우리에게서 숭례문의 과거가 사라졌듯 1만2000년 전 ‘루지아’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아니,돌아올 수 없다.‘우리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것이다.문화유산과 박물관 화재는 그걸 일깨우고 있다.문화유산과 박물관 관리실태를 다시 돌아볼 때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