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혁 제1야전수송교육단 병장

▲ 주동혁 제1야전수송교육단 병장
▲ 주동혁 제1야전수송교육단 병장
군 생활을 하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개인정비시간에 엄마와 통화하는 시간이다.초등학생 시절 아들의 유치한 첫사랑 이야기부터 지금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까지 항상 곁에서 친구처럼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고,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그런 나에게 부대 내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의 책은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홀린 듯 책을 집어 들었다.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이 책의 첫 문구다.많은 생각이 들게 하면서 동시에 상황에 바로 몰입하게 하는 이 문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생신잔치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노부부가 서울역에서 서로 손을 놓치며 치매가 있던 노모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자식들은 엄마를 찾기 위해 모두들 난리다.엄마를 잃은 딸,엄마를 잃은 아들,그리고 아내를 잃은 남편의 이야기를 2인칭 시점으로 이어가는 이 책은 각자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인 ‘박소녀’를 찾아다니며 그녀와 있었던 사건들을 회상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가족들은 여러 가지 추억들을 떠올리며 본인이 가장 엄마,아내에 대해 잘 안다고 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당장 엄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면서도 신상정보 말고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면서 몰랐던 부분이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리고는 그 때는 왜 엄마의 마음을 몰랐을까 하며 후회한다.후회하면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또 추억을 꺼내고 또 후회한다.그렇게 책의 주인공들은 계절이 3번이 바뀌고도 엄마를 찾지 못한 채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엄마를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표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 정도로 내게 엄마는 항상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 같은 존재인데 잃어버린다는 게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엄마가 떠난 것도 아닌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강하게 다가왔다.엄마라는 존재를 당연시 여긴다면 정말 엄마가 떠나기 전에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그렇게 이 책은 내게 엄마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했다.

책을 읽으며 엄마와 함께 한 많은 추억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추억들이 있었다.그 중 하나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의 일이다.어릴 적부터 처음 시작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새로운 변화가 있을 때마다 어려움을 겪어왔다.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보통의 아이들이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는 것과 달리,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울었고 학교까지 데려다준 엄마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그래도 학교에서 수업도 듣고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억지로 떼어놓고 집으로 돌아간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그때는 단호하다고 생각했다.씩씩하다고까지 생각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 다 컸을 때 엄마도 집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집에 데려올까 고민도 했다고 했다.

또 하나는 수능시험과 관련된 추억이다.수능시험 날,긴장해 바짝 겁먹은 아들을 보며 엄마도 아들의 수능은 처음이라 덩달아 긴장해 있었다고 한다.후에 엄마는 긴장해 있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응원도 못해주고 시험장에 넣어줬던게 미안하다고 했다.뭘 그렇게 미안할 게 많으냐고,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면 된 거 아니냐고,아들은 너무 좋은데 왜 그러냐고 했지만 그냥 제일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내게 항상 모든 것을 씩씩하게 해낼 수 있는 슈퍼맨이고 싶어 하고,잘해주면서도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그런 존재였다.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엄마는 자식을 낳고 자식이 나이를 먹으면서 엄마도 엄마 나이라는 것을 먹는다고 한다.자식이 태어나 처음으로 옹알이를 하면 엄마도 옹알이를 하는 나이를 먹고,5살이 되어 유치원에 가면 엄마도 유치원에 가는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결국 엄마도 다 처음이라는 얘기다.처음이기에 서툴고 그렇기에 실수도 한다.하지만 엄마는 항상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안해하고 자책한다.그리고 그걸 모르는 자식들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다.

왜 더 잘하지 못했냐는 꾸중보다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힘들다는 말보다는 괜찮다는 말이 더 편해 보이는 엄마라는 존재도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랑스러운 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그런 엄마에게 자식이 하는 감사하다는 말,사랑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를 웃게 할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표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런 작은 것들을 잊어버리면 정말 그녀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가수 이적의 평처럼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이 아픈 이야기’가 내 얘기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오늘은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하며 평소 낯간지러워서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해보면 어떨까.혹은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 써보는 것이 어떨까.유난히 엄마 생각이 더 나는 오늘 같은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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