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료산업 전략 육성 대지진· 경기침체 극복

일본은 세계적으로 2~3위권을 다툴만큼 의료기기·제약 시장을 보유한 전통적인 바이오헬스 강국이다.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4명을 배출한 기초 연구 역량을 갖고 있고 올림푸스,테루모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도 있다.하지만 일본도 최근 첨단의료기술을 접목한 신제품 상용화가 개인정보보호 등 규제로 지연되면서 바이오헬스 산업의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이에 일본은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첨단의료산업 연구개발 기능을 총괄하는 기구를 지자체별로 설립,기초연구부터 임상연구,상용화 연구까지 전 주기를 지원하는 새로운 체계를 갖추고 대응하고 있다.일본 효고현 고베시와 돗토리현 돗토리시 인근 첨단의료산업 현장을 돌아봤다.

▲ 고베 의료산업도시 바이오메디컬 이노베이션 클러스터(KBIC)전경.도보 10~15분 거리에 대학과 연구소,기업,병원 등이 밀집해 있어 기초연구와 상용화에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 고베 의료산업도시 바이오메디컬 이노베이션 클러스터(KBIC)전경.도보 10~15분 거리에 대학과 연구소,기업,병원 등이 밀집해 있어 기초연구와 상용화에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 고베 의료산업도시

1995년 1월17일 일본 효고현 아와지 섬 북쪽에서 7.3의 강진이 발생했다.당시 고베시 인구 150만명 가운데 4600여 명의 인명피해와 고베시 총생산에 해당하는 6조9000억엔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베시는 대지진 이후 황폐해진 도시와 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1998년부터 인공섬 ‘포트아일랜드’ 위에 ‘고베 바이오메디컬 이노베이션 클러스터(Kobe Biomedical Innovation Cluster·이하 KBIC)’를 조성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큰 의료 클러스터로 성장한 KBIC에는 330여개 기업과 일본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RIKEN)를 비롯한 연구소,전문병원,제약 회사들이 모여 기초 연구부터 임상에 이르기까지 첨단의료기기 및 신약개발의 전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화학연구소의 슈퍼컴퓨터 ‘케이(京)’는 디지털헬스케어의 핵심인 빅데이터 처리 성능 랭킹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한데 이어 오는 2020년 출시를 목표로 ‘케이’ 보다 성능이 향상된 후속 슈퍼컴퓨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개별 의료를 통한 건강 장수 사회의 실현,지진·쓰나미 등 상세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KBIC의 가장 큰 경쟁력은 기초부터 임상연구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의료기관과 연계해 시민에 대한 고도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미세침습 암센터를 비롯해 중앙시민병원,효고현립병원 등 다양한 전문 병원들이 입주해 있어 KBIC에서 생산되는 의료기술을 환자들에게 곧바로 서비스하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더욱이 KBIC 내에 있는 기업과 연구소는 개발과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실용화,상품화,판로개척에까지 나서고 있으며 예방,복지,의료기기,재생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의료기술을 상용화하고 있다. 즉 기업과 연구소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연구와 사업을 연계하고 있다.KBIC의 메인 컨트롤타워는 고베시지만 기업과 연구소,지방정부를 연결하고 해외 기술개발 교류협력 등을 주관하는 곳은 고베 국제의료교류재단이다.

고베 국제의료교류재단 아키노부 고토 대표이사는 “의료기기,의약품 등의 연구개발과 임상연구지원,재생의료 임상응용 등 클러스터 전체 R&D를 이끌고있는 동시에 클러스터 참여 연구기관의 성과를 실용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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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형 첨단의료 거점

고베시와 국제의료교류재단은 고베의료산업도시 내에 일본산 의료용 로봇개발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종합형 의료기기 연구개발·창출거점’으로 도약을 선언했다. 가와사키 중공업과 의료용 검사기기 대형업체인 시스맥스가 공동출자한 ‘메디카로이드’는 내년 출시 목표로 일본산 수술지원로봇을 개발해 고베의 기업들이 의료분야 진출시 기술개발 및 지원에 활용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했다.

종합형 의료기기 연구개발 창출거점은 고베의료산업도시 내 이토츄 메디컬 플라자 건물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층은 일본 최대규모인 100㎡의 ‘고도의료대응형수술실’로 조성했다.지난 6월 방문한 이곳에는 메디카로이드가 개발한 로봇 수술대 3대와 최신 내시경시스템 등을 구비해 놓고 있어 기업들이 의료용 기기개발 과정의 동물실험에 활용하고 있다.수술실의 경우 일본 국내 최대 가상현실(VR) 시스템과 사물인터넷 기술 등 디지털헬스케어 기술을 접목해 기기 설치 시의 문제점 등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술지원로봇 시뮬레이션 장치 등을 구비하고 있어 의사연수 및 기업 기술지원도 가능하다는 것이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내년 최초로 출시되는 일본산 수술지원로봇은 기존의 상용화된 수술지원로봇인 다빈치에 대항하기 위해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일본산 수술지원로봇은 콤팩트한 이미지와 편리한 원격조작 기능을 부여하고 가격까지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의료 산업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돗토리시에 위치한 주식회사 라식 직원들이 디지털헬스케어를 접목한 전도방지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돗토리시에 위치한 주식회사 라식 직원들이 디지털헬스케어를 접목한 전도방지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고령화 시대 첨단 기술 접목

원주와 의료기기 교류협력을 하고 있는 일본 돗토리현은 10여 년 까지만 해도 대기업인 산요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제조기업이 대부분 이었으나 파나소닉의 자회사로 전환된 이후 중국 하이얼이 세탁기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분야를 인수하면서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로 인해 산요전자 하청 기업들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의료기기 관련 업종으로 전환하고 있다. 돗토리시에 위치한 공익재단법인 돗토리산업진흥기구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돗토리현산업진흥기구 사무실에서 만난 고이치 나까야마 이사장은 “산요전자 부도이후 돗토리시는 지역경제 침체 위기 탈출을 위해 의료기기를 비롯한 자동차,항공기 등 3개 분야를 집중육성하고 있다”며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매니저,코디네이터를 파견해 기술개발과 판로개척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돗토리현에는 치매환자를 비롯한 고령층 인구가 타 지자체에 비해 현저히 많아 첨단의료분야인 로봇과 AI(인공지능) 등 디지털 헬스케어와 접목한 의료기술을 통해 요양병원의 만성적인 간병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각한 인력 감소를 로봇과 AI 기술을 통해 해결하려는 일본에서는 환자 간병은 물론 실버케어,홈케어 분야에도 적극 디지털헬스케어를 접목하고 있다. 인간형 로봇과 로봇휠체어,스마트 베드 등 자동화된 환자 지원 수단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용자의 생체 정보를 측정하고 이를 분석해 건강관리 및 진단,질병 예측과 같은 사용자 맞춤형 스마트 서비스 창출을 위한 기업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 산·학·연·병원 연계 헬스케어 시스템 구축

돗토리산업진흥기구는 최근 치매와 관련된 연구에 디지털헬스케어를 접목시킨 의료기기 제조 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돗토리의대의 치매 전문 의사와 연계해 AI기술을 적용한 로봇을 만들거나 생활의료기기인 안마의자에도 인공지능을 도입해 사용자의 데이터를 기억했다가 해당 사용자가 다시 이용할 경우 심전도와 혈압 등을 파악한 뒤 자동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하는 제품도 출시됐다. 이는 돗토리현에 위치한 병원 등지의 수요가 있기 때문으로 기업은 병원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처럼 제품 출시 후 수요처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과는 달랐다.

산요가 떠난 공장부지에 터를 잡은 주식회사 라식(LASSIC)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전형적인 디지텔 헬스케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에서 만난 후토나카 매니저는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고령자 전복사고가 크게 늘고 사망자 비율도 높아지고 있어 첨단기술 접목이 필요했다”면서 “돗토리시에는 치매를 비롯한 고령환자 수만명이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전도(넘어짐)방지 소프트웨어를 개발,시범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시스템은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는 표정과 움직임 부분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고령자의 전복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목표다. 돗토리의대와 연구소,돗토리시,산업진흥기구의 지원으로 인공지능을 접목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환자의 몸에 센서를 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일반CCTV로 영상만을 찍으면 환자의 상태를 알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이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CCTV가 환자의 평상시와 다른 표정과 움직임을 판정하면 원거리에 있는 간호사나 요양사에게 곧바로 전달해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는 환자가 넘어진 이후에 대응하는 기술이지만 내년에는 관절의 움직임까지 판정해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후토나카 매니저는 “기술의 핵심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인데 인공지능 학습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계속적으로 촬영해야한다”면서 “얼굴은 모자이크를 한 상태에서 계속 찍는다 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 등의 규제는 여전히 해결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철·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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