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돈설 강릉문화원장
▲ 최돈설 강릉문화원장
하늘이 절기와 계절을 구분한다더니 몇 차례의 비가 쏟아지고 고르지 못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여름과 가을을 구렁처럼 갈라놓았다.어느덧 폭염이 지나가고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지난 무더위를 생각하면 누구보다 이 가을을 반긴다.대지와 산하를 뒤덮던 여름의 과분한 늦더위는 물론 사무실에,캐비닛 속에,옷 속에 남아있던 열기까지 남김없이 씻겨가 버렸다.이젠 폭염 속에 짜증냈던 마음도 묽어지고,어수선하던 생각도 가지런히 정돈되어 청정한 가을 날씨와 더불어 사색을 더하고 있다.

2018년 강원도 지정문화재 통계(13개 지표)를 보면 강릉은 보물,국가무형문화재 등 13개 지표 중 무려 9개 분야에서 최상위에 랭크돼 있다.

문화유산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고리이며 미래를 열어주는 값진 자산이자 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귀중한 유산이다.강릉지역 선조들의 얼이 담긴 문화재를 통해 야광화(夜光化)의 옷을 입혀 ‘문화재 야행(夜行) 사업’을 하게 된 까닭이다.

전국 제일의 자연풍광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강릉은,예로부터 문향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재의 보고로 널리 알려져 왔다.

신라시대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강릉 곳곳에 산재한 이들 문화재를 통해 드높은 문향의 숨결을 느끼고자 함이 였으리라.그동안 선대는 지극정성으로 문화재를 물려주었고,당대는 전국에서도 으뜸가는 전통문화도시·인문역사문화도시로 탈바꿈시켰고,후대는 서로 섞이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내는 시대 흐름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동안 보존 속에 길들여져 있던 문화재들도 이제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호흡하는,‘살아있는’ 문화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받게 되었다.전통문화 보존과 현대화를 선도해온 강릉시와 강릉문화원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소명에 발맞추어 2016년부터 매년 ‘문화재 야행(夜行)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쳐왔고,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진행해온 이 사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적 관심과 큰 반향을 일으키며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화 축제로 만개하고 있다.

올해도 ‘2018 강릉 문화재 야행’은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상징하는 강릉대도호부를 중심으로 2회에 걸쳐 펼쳐졌고 약 13만 여명이 다녀갔다.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평가를 바탕으로 다양한 역사·문화콘텐츠를 접목하여 밤에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발굴·보급하였다.이 지면을 통해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소설가 이병주는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우리 강릉은 전국의 그 어떤 도시보다 ‘태양에 바래 진 역사와 월광에 물든 신화’를 신앙처럼 간직하고 있다.

특히,수많은 문화재에 배인 월광에 물든 신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과 꿈을 자극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남북정상이 또 만난다.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소통 채널을 마련했고,평화의 길을 통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민족이 평화와 번영으로 가길 희망한다.‘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정의가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성경 시편)’.때마침 커피향 같은 가을도 내렸다.나뭇잎은 오색으로 물들고,흐르는 계곡 물소리 청아하고,시름 깊은 상념은 작아진다.‘아침에 커피 한 잔,점심에 송이 한 입,저녁에 한우 한 점’해도 좋을 것 같다.모쪼록,쉼표있는 한가위 보내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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