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을 4년 앞둔 2014년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그해 9월 평창에서 열린 유엔생물다양성총회에 참석하려던 케냐인이 엉뚱한 평양의 순안공항에 내렸다가 좇겨났다.이 일화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해 2015년 뒤늦게 알려졌다.주인공은 당시 42세의 다니엘 올로마에 올레 사피트 씨인데,여행사 직원이 평창 영문 표기 ‘Pyeongchang’을 평양(Pyongyang)으로 혼동해 발권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대형 사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때 웃음을 선사했지만 갈 길 바쁜 평창으로선 마냥 그럴 수 없었다.당시 평창은 3수 끝에 어렵사리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상태였고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었다.크고 작은 국제 경기를 적지 않게 열었고 세 번의 올림픽 도전과정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줄 알았던 평창이었다.이 황당한 사건이 그 허를 찔렀다.대회운영과 홍보 전략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들의 부주의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평창으로서는 한가하게 생각할 일 만은 아니었다.이방인들에겐 평창(平昌)과 평양(平壤)이 너무 닮은꼴인데서 빚어진 일인데,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셈이다.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데 서로 구분이 안 될 만큼 닮았다면 생김새든 호칭이든 예사 인연이 아니다.그 이후에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면 이 인연은 어떤 전조(前兆)가 아니었나 싶기까지도 하다.

지난 2월 2018 동계올림픽이 평창과 강릉,정선일원에서 열렸다.여러 우려가 있었으나 평창올림픽은 가장 극적인 올림픽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기에 충분했다.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으나 평창올림픽은 모든 분열과 갈등을 녹여내는 용광로의 역할을 했다.지난 1월 북한이 전격 올림픽 참가를 결정했고 평창은 결국 평화의 물꼬를 트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역할까지 톡톡히 해 냈다.

올림픽과 강원도라는 시공간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눈물겨운 강원도의 올림픽도전사가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평창을 통해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4월과 5월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그 출발은 평창이었다.그리고 어제(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김정은 국무위원장과 3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평창에서 뿌린 씨앗이 평양에서 결실을 봤으면 한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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