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원주출신 임경섭 시인 두번째 시집
화자에 ‘낯선 이름’ 시적 관습 배척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단의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시작활동을 해온 임경섭(원주출신) 시인이 신작 시집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사진)’를 출간했다.

첫 시집 ‘죄책감’(문학동네 2014)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시집이다.임경섭의 시는 반 박자 혹은 한 박자 느린 걸음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시집을 펼치면 우선은 곳곳에 등장하는 외국 인명들이 낯설다.시인은 통상적인 시적 화자인 ‘나’의 자리에 거의 모든 작품마다 의도적으로 낯선 이름을 집어넣는다.

시에서 관습적 이름에 가까운 ‘나’의 부재가 오히려 ‘나’와 관계를 맺는 세계의 존재감을 더욱 강화,이름과 내밀하게 결속하던 관계들이 새롭게 열리는 다른 차원의 현실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 시인은 기존의 언어가 품고 있는 은유와 문장이 지니는 실효성을 찬찬히 의심하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해가 지는 곳에서/해가 지고 있었다//나무가 움직이는 곳에서/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엄마가 담근 김치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해/형이 슬퍼한 밤이었다//김치는 써는 소리마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고/형이 말했지만/나는 도무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는 밤이었다//창문이 있는 곳에서/어둠이 새어나오고 있었다//달이 떠 있어야 할 곳엔/이미 구름이 한창이었다//모두가 돌아오는 곳에서/모두가 돌아오진 않았다(시 ‘처음의 맛’ 전문)

이번 시집은 총 5부로 나눠 ‘기묘한 현실주의’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형식의 시세계를 선보인다.창비 160쪽 8000원. 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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