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문순 화천군수
▲ 최문순 화천군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대한민국 국가 원수가 중국이 아닌,북한 내륙을 가로질러 백두산 정상에 선 장면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평화’라는 가슴 벅찬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2005년 노벨상 수상자이자 게임이론의 대가인 고(故) 토머스 셸링(Thomas Crombie Schelling)은 “순종보다는 저항이,저항보다는 보복이 공격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유지 전략은 냉전시대를 설명하는 국제정치의 주류 이론이었다.

정전 상태인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중무장지대(HMZ-Heavy Militarized Zone)다.이러한 상황에서 평화에 이르는 길은 매우 어렵고,복잡하기 마련이다.선결조건인 양측의 신뢰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가장 중요한 1차 과제는 군사적 긴장 완화다.이번 평양선언을 통해 군사적 충돌에 대한 우려가 상당 부분 불식된 것은 진정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북 간 신뢰 확보의 2차 과제는 해상이나 제3국을 통한 ‘간접 연결’보다는 내륙,즉 DMZ와 군사분계선을 종적으로 관통하는 ‘종적 연결’이다.함께 지뢰를 제거하고,종적 연결 과정에서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련의 공동 작업은 보다 진보된 형태의 신뢰를 쌓게 할 수 있다.

마지막 3차 과제는 공동사업의 추진이다.남·북이 사업의 주체가 돼서 협력의 분야를 조금씩 넓혀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국내 비준 등의 부담이 적은 비군사적,비정치적인 분야에서 시작해 점차 협력을 고도화시키는 전략이 남·북 모두에게 바람직하다.남북공동산업단지 같은 장기구상은 그 다음 단계의 과제로 남겨둬도 좋다.

화천군은 이러한 남북 간 신뢰구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무대다.군사적 긴장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금,필요한 것은 내륙에서의 종적 연결이다.철도나 도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지만,남·북을 잇는 북한강 수계는 상대적으로 연결이 용이하다.육지에 비해 군사적 부담도 덜할 뿐 아니라 금강산 관광과도 연계할 수 있다.평화의 댐,백암산 평화생태특구 등과 평화관광벨트로 묶을 수 있다면,민간자본 유치 가능성도 높다.이미 화천군과 강원도는 남·북 공동수계 연결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남·북 공동사업 추진 역시 화천에서 시작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화천군은 이미 2007년 한국수달연구센터를 통해 북한 측과 멸종위기종 수달의 생태보존을 위한 공동연구를 추진하다가 군사적 긴장으로 중단한 바 있다.사업재개의 강력한 명분이 있는 셈이다.우리 화천이 자랑하는 세계적 겨울축제인 화천산천어축제도 공동사업의 좋은 소재다.금강산 계곡의 청정수를 활용한 산천어 양식장 공동 운영,토종 산천어 종 복원 공동연구는 부담 없이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콘텐츠다.화천군 전역을 아우르는 장장 80㎞의 자전거 길은 금강산과 연결될 경우 청정함과 상징성,높은 난이도 등으로 인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세계적 사이클 성지로 부상할 수 있다.정부는 이러한 공동사업이 북한에게도 분명히 이득이 된다는 점을 차분하고,강력하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분명한 것은 남·북 정상의 합의문 낭독 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평화는 신뢰를 필요로 하고,신뢰는 실천을 먹고 자란다.실현 가능한 분야에서의 실천이 평화에 이르는 첫 걸음이다.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인 신뢰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언젠가 올 통일의 그 날,남·북한 국가원수가 북한강 옆 화천 세계평화의 종공원에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서 기념 핸드 프린팅을 남기는 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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