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걸작 노트르담 성당 위 오늘의 하늘과 보름달 ‘조화’
도시의 달은 왜 크고 아름다울까
‘ 아름다움과 슬픔의 미학’ 서린
‘ 노트르담의 꼽추’ 무대
웅장한 규모와 예술성 압도
명도·연변·색채대비 효과
건물과 어우러진 풍경
역동적 명멸 미감 극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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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지나는 마지막 9월은 전형적 가을하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바로 전에도 너무 맑아 믿어지지 않는 풍경을 감동으로 지켜본 바 있다.백두산 천지에 남북의 정상이 함께 올랐을 때 그 깨끗한 자연이 오히려 세트장 같이 비현실로 보였다.믿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지금도 청명한 가을,흰 구름 사이로 하늘은 맑게 푸르다.밤은 더없이 깨끗한 달빛을 흩뿌려 준다.모래조차 셀 수 있는 흙길을 걸을 때의 달그림자는 또 얼마나 진하기만 하던지.

보름달을 보러갈 때 저마다 명소를 찾는 방식은 있을 것이다.그래도 뷰 포인트를 잘 찾는 방법은 따로 있을 수 있다.경부고속도로로 버스를 타고 밤하늘 아래 서울로 들어서면 한강에서 넓은 도시를 조감하게 된다.멀리 있는 건물들은 옅은 빛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입방체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그 위에 떠오르는 달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던가.일몰에서도 도시 배경은 명장면을 선사한다.대룡산 아래로 돌아드는 춘천의 외곽도로에서는 아파트 너머에 삼악산과 태양이 걸리곤 한다.그 때의 일몰이 볼 만한 장관이다.천년고도 전라도 전주의 북쪽에는 긴 외곽도로가 있다.만경평야를 향하는 그 길은 그저 곧은 직선이다.그 끝없는 도로가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끝 즈음에,떨어지는 태양이 닿을 때 그게 또 눈길을 사로잡는다.저 멀리 도로가 까마득히 보이고 그 위로 내려앉는 붉은 해,그것은 도로와 지평선과 빨려드는 차들을 모두 담아낼 만큼 거대해 그 아래 있는 모든 것을 작은 풍경으로 만든다.

그런데 무엇보다 기억할 수 있는 최고의 장관은 예술과 대자연이 만났을 때이다.천년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종탑 사이로 보름달을 본 적이 있다.파리에 간다면 물론 누구나 보기를 기대하는 에펠탑과 루브르가 우선 있다.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명소들이다.그 루브르박물관 옆에 센 강이 만든 섬도 있다.강도 섬도 한강의 여의도보다는 훨씬 작지만 그 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노트르담은 성모마리아를 뜻한다.고딕미술이다.천 년 전,파리의 그 노트르담에 눈이 미치면 중세의 고딕을 얕보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오히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화려함과 예술성에 압도당한다.

대리석과 외부장식 조각까지 이런 고딕대성당은 몇 세기에 걸쳐 건축되는 것이 보통이다.고딕의 걸작 파리의 노트르담은 오늘날 우리에게 고딕미술의 꽃이라고 불리고 있다.밝고 화려한 외관,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오색 빛의 천국이 고딕성당이다.게다가 고층빌딩에 익숙한 지금 보기에도 흰 대리석에 놀라운 크기로 솟구쳐 오른 노트르담은 가히 환상적이다.하물며 중세 사람들에게 노트르담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대해 보였을까는 충분히 상상이 가는 일이다.애니메이션 ‘노트르담의 꼽추’에는 구름이 가득 덮인 파리 시내 저 멀리 탑 두 개가 솟아있는 장면이 나온다.구름 위로 솟아오른 노트르담의 종탑,중세에 그것은 그렇게 높게 보였을 것이다.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투사하면 ‘아름다움과 슬픔의 미학’이 그 종탑에 진하게 서려있다.그 사이에 떠 있는 보름달은 넋을 놓게 만들 정도의 것이었다.

도시의 달이 커 보이는 것은 ‘대비’ 효과 때문이다.미술의 대비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명도대비,연변대비,색채대비,면적대비 등.가령 명도대비는 이런 것이다(그림 1).왼쪽 가운데 원은 아주 어둡다.오른쪽의 원이 아주 밝아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그런데 실은 두 색은 같은 회색이다.다시 말하면 검은 판 위에서와 흰 판 위에서의 회색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같기는커녕 비슷한 밝기,즉 같은 명도로 보이지 않는다.흰색과 회색,검은색과 회색이 서로 ‘대비’되어 밝기가 반대로 보이기 때문이다.흰 바탕 틈새를 두고 검은색 네모가 가지런히 놓이면(그림 2) 그 흰 줄이 교차하는 곳에 회색 네모 점이 보인다.검은색 사이의 흰 줄은 대비효과로 더욱 밝아 보인다.그러니 자연히 그런 대비효과가 없는 흰색 줄이 교차되는 부분은 더 어두워 보이는 것이다.어른거리듯 보이는 것은 우리가 보는 눈의 초점을 정확히 한 자리에 고정해놓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다른 그림에서는 시각의 잔상까지 더해져 가운데 원 안에 검은 점들이 더욱 역동적으로 명멸하게 된다(그림 3).

우리에게 익숙한 거대한 건물,서울 외곽 어디서나 우뚝 솟아 보이는 롯데타워도 작은 풍경이 되도록 ‘대비’되게 하는 달,그렇게 도시의 보름달은 우리의 숭고 미감을 자극하고 있다.그 자연이 예술과 만난다면 그 미감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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