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주동 금융감독원 강릉지원장
▲ 엄주동 금융감독원 강릉지원장
‘신용(信用)’을 얘기할 때 2000년초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용조회회사를 빼놓을 수 없다.신용조회 회사들은 과거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던 개인의 ‘신용’을 연체 가능성에 따라 1~1000점으로 계량화해 개개인별로 ‘신용등급’을 부여했고,이제 신용등급은 대출,카드발급 심사 등 금융거래 외에 렌탈,인터넷 가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간단한 퀴즈를 내보자.19세기 ‘월스트리트의 마녀’로 불린 미국의 ‘헤티 그린’은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여성 중 한명으로 지독한 구두쇠로 알려져 있다.작은 월세집에 살면서 1년내내 검정색 옷 한벌로 버티는가 하면 추운 날씨에도 난방을 하거나 더운 물을 사용하지 않았고 비누가 아까워 손도 잘 씻지 않았다고 한다.심지어 아들이 썰매를 타다 다리를 크게 다쳤을 때에도 무료진료소를 전전하다 결국 한쪽 다리를 잃었을 정도다.그녀는 지금 돈으로 약 160억달러(18조원) 상당의 유산을 남기고 죽었는데 만일 그녀가 살아있다면 신용등급이 어떻게 될까.

당연히 1등급을 받았을 것 같지만,10등급중 중간에 해당하는 4~6등급이 정답이다.신용조회회사들은 부채수준,연체,신용형태,거래기간 등의 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등급을 산출하는데,아무리 부자였어도 자린고비인 그녀가 카드를 만들거나 대출을 받았을 리는 없으므로 금융거래 이력이 전무하고 신용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등급을 부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가지 시사점을 주는데,하나는 신용등급 평가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고,다른 하나는 재산이 많지 않더라도 평가 요소들을 잘 관리하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평가요소 가운데 신용조회회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연체 정보다.가령 10만원을 5영업일 이상 연체할 경우에는 연체정보가 등재돼 신용평가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흔히 ‘연체금을 상환하면 신용등급이 바로 회복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법상 연체금 상환 후에도 최장 5년까지 연체정보를 평가에 활용할 수 있어 한번 떨어진 신용등급이 본래 등급으로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년 11월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청년·대학생 금융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청년(19~31세) 대출자의 15.2%가 연체경험이 있고,이 중 32.3%는 연체가 오래돼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적이 있다고 한다.더욱이 최근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 ‘대학생활의 꿀팁’으로 국가의 생활비 대출을 받아 해외여행,유흥에 사용하거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고 하니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없다.돈을 쓸 때는 잠시 행복할 수 있지만 연체돼 채무불이행자가 되면 사회로 진출했을 때 채용이 거절되거나,금융이용이 제약돼 빈곤의 굴레에 영영 갇혀버릴 수 있다.

이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과 학교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신용관리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평소 수입 범위에서만 지출하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돈을 빌려준 사람은 빌린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다.’미국 최고액권(100달러)에 등장하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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