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밀을 아주 좋아해
아주 감칠맛이 있거든
특히나 나쁜비밀은 아주 맛있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햇살처럼 따뜻했어.

“민우야, 누가 너한테 그 일에 대해 물으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돼.”

“누가 물어 보는데요?”

“교장 선생님일 수도 있고 다른 어른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내 말에 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어.하지만 곧 뾰족한 세모 모양으로 변했단다.나는 선생님 눈이 무서워서 고개를 푹 숙였어.그 눈이 나를 찌르는 것 같았거든.그래서 내 발끝만 봤지.선생님은 다시 나를 달래듯이 말했어.

“거짓말은 가짜로 꾸며내는 거잖아.이거랑 다르지.그냥 민우 너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돼.그러면 거짓말이 아니야,맞지?”

나는 거짓말인 거 같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거짓말이라고 말해도 선생님이 계속 아니라고 할 것 같았거든.자꾸 배가 아프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어.선생님이 할 말이 있다고 나만 남으라고 한 다음부터 말이야.

그 날부터 선생님은 내 이름을 자주 불렀어.다른 반에 심부름 가는 일을 시킬 때도,발표할 때도 말이야.손을 들지 않아도 내 이름을 불렀어.그리고 칭찬을 아주 많이 해줬지.틀린 답을 이야기할 때도 말이야.

“답이 틀리기는 했지만 용기 있게 발표 참 잘했어요.”

선생님의 말에 꼴찌인 태웅이도 반장 수현이도 나를 부러워했어.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야.발표하는 일,심부름 가는 일…….모두 다 싫어졌어.원래 정말 좋아했던 일들이었는데 말이지.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까지도! 내 이름이 들리면 가슴이 쿵쿵 뛰어서 터져 버릴까봐 걱정도 됐단다.

학교 가기도 점점 싫어졌어.그래서 오늘도 눈은 일찍 떴지만 이불 속에서 꾸물댔지.결국 엄마가 킹콩 같은 발소리를 내면서 나를 깨웠어.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엄마, 나 학교 안가면 안돼요?”

“또 쓸데없는 소리한다. 혼나기 전에 빨리 학교 안 가?”

학교에 오긴 했지만 교실에 들어가기 싫더라.오늘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를 것 같았거든.학교 건물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데 수업이 시작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종이 울렸어.교실에 안 들어가는 나를 봤는지 저 멀리 학교 보안관 아저씨가 오지 뭐야.

‘잡히면 혼날 거야.’

숨을 곳을 찾았어. 때마침 창고 문이 열려 있었지.평소에는 한 번도 열려있지 않았는데! 뜀틀부터 평행대,공 등 체육 수업을 할 때 쓰는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지.저 멀리서 보안관 아저씨 발소리가 들렸어.나는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단다.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있었어.다행히 아저씨의 발소리는 점점 작아졌지.거의 안 들릴 정도로 말이야.

그 때였어.어디선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들리지 뭐야.

“이제 갔어.이제 갔으니까 좀 이 안에서 나가줄래?너 때문에 잠을 깼어!”

갑자기 툭 튀어나온 목소리에 나는 겁이 잔뜩 났어.

“누구세요?”

“나는 딱풀 마녀.누구냐고 묻기 전에 자기소개부터 먼저 하는 게 예의야.”

“저는 이 학교 3학년 이민우요.”

그런데 마녀라고?무섭기도 했지만 너무 궁금했어.나는 마녀에게 물었지.

“혹시 마녀라면 마법을 부릴 수도 있나요?”

“물론 마법이야 누워서 떡먹기지.그런데 그걸 왜 묻지?”

“있잖아요…….”

나는 선생님이 부탁한 일이 생각났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어.

“어휴, 답답해!너한테 묻는 거 보다는 네 머릿속을 읽는 것이 낫겠다.손바닥 내밀어.”

주춤거리며 딱풀 마녀에게 다가갔어.무섭지만 손바닥을 내밀었지.내 손바닥 위에 마녀는 자기 손바닥을 올려놓았어.그 순간 왜 딱풀 마녀라는 이름을 가졌는지 알았단다.마녀의 손바닥은 끈적끈적했어.그리고 축축하기도 했지.풀을 발라놓은 것 같기도 했고 소 혓바닥을 올려놓은 것 같기도 했어.

“흐음흐음,좋아.내가 너의 고민을 해결해주면 너는 나한테 무엇을 줄거니?”

마녀의 말에 나는 가방에 있는 딱지를 꺼냈어.친구 겨운이가 부러워했던 아주 귀한 딱지였지.마녀는 힐끔 딱지를 보더니 코웃음을 쳤어.

“겨우 시시하게 딱지를 주겠다고?나중에 말이야.네 고민이 해결되고 나면 너한테 소중한 것을 받을 거야.”

“그게 뭔데요?”

“나중에 말해주마.”

마녀는 혼자 낄낄댔어.마녀가 가져간다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어.하지만 마녀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지.

“네 고민은 선생님과 약속했는데 혹시나 솔직하게 말하게 될까봐 걱정되는 거지?”

진짜 마녀가 맞나봐.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어.

“다행이야.나는 비밀을 아주 좋아해.아주 감칠맛이 있거든.특히나 나쁜 비밀은 아주 맛있지.달콤하거든.사탕처럼 말이지.이제 교실로 돌아가도 된다.내가 네가 돌아가면 주문을 걸 거야.그럼 말이지,네가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입이 풀칠한 것처럼 딱 달라붙어 말할 수 없게 될 거야.그러니까 걱정 하지 마.네 소중한 것은 나중에 받으마.나는 자던 잠을 마저 자야 하거든.”

나는 교실로 갔어.선생님이 혼낼까봐 너무 무서워서 문 앞에서 한참 서성였지.선생님은 혼내지 않았어.대신 다음부터는 늦지 말라고만 했지.

1교시가 끝나고 선생님이 나를 불렀어.

“민우야,교장 선생님이 부르신다.선생님이랑 같이 가자.선생님이 말한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알았지?”

선생님은 다정하게 말했어.그리고 내 손을 잡았지.선생님의 손은 목소리와 달리 차가왔어.내 마음까지 얼어붙어버릴 것 같았지.

교장실에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몇몇 선생님,겨운이와 겨운이 엄마가 앉아있었어.내가 쭈뼛거리며 들어서자 교장 선생님이 다가왔어.

“네가 3학년 1반 이민우구나.교장 선생님이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불렀어.”

교장 선생님이 교감 선생님에게 눈짓을 하자 교감 선생님이 교장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복도로 데리고 나갔어.교장실에는 교장 선생님과 나만 남게 된 거야.

“그냥 솔직하게만 이야기해줄래?겨운이 말로는 상호가 괴롭히는 것을 담임 선생님한테 여러 번 말했다고 하더구나.몇 번은 네가 함께 가주기도 했다던데 맞니?”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어.마녀가 마법을 제대로 걸었나봐.나는 고개를 저었지.

“그럼 겨운이가 담임 선생님한테 말하지 않았다는 거지?”

순간 겨운이가 생각이 나서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싶어졌어.하지만 곧 선생님이 교장실에 들어오기 전에 한 말이 생각났지.

“만약에 네가 말하면 아마 나보다 더 무서운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으로 오게 될 거야.”

나는 다행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한 시간 넘게 말이지.교장 선생님은 결국 내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했어.결국 나보고 나가라고 했지.마녀 말이 맞았어.그 일을 생각하는 순간 입술에 딱풀이라도 붙인 거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어.나가자마자 겨운이가 나에게로 뛰어왔어.나를 기다린 것처럼 말이지.

“민우야!”

겨운이가 부르는데 그냥 밖으로 뛰어나왔어.겨운이가 쫓아오지 못하게 말이야.

겨운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친구야.우리 집 옆이 겨운이네 집이거든.겨운이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키가 작았어.하지만 목소리는 매우 컸지.

2학년 때는 다른 반이었지만 3학년이 되어서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지.우리 반에는 상호라는 아이가 있어.엄청 키가 크고 힘도 세.거기다가 상호네 형은 학교에서 나쁜 형으로 아주 유명해.

“이민우,너 그 딱지 좋아 보이는데?나 좀 빌려줘.”

“이거? 안……돼.하나밖에 없는 거야.”

“치사하게.달라는 것도 아니고 빌려달라는데 그러냐?”

상호는 내 딱지를 빼앗았어.그때였어.겨운이가 다시 딱지를 빼앗았지.그리고는 나에게 돌려줬어.

“빌려주기 싫다고 하잖아.”

상호가 겨운이를 향해 다가오는데 수업 종이 울렸어.나는 상호가 겨운이를 때리기라도 할까봐 엄청 겁이 났단다.수업 종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처음이었지.수업이 끝나고 상호가 선생님 책상으로 나가더니 이렇게 말했어.

“딱지 시합 하자.이겨운만 빼고 말이야.”

다들 겨운이 눈치를 보더니 상호한테 갔어.겨운이는 분한지 씩씩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고.그게 시작이었지.상호는 점점 심하게 괴롭혔어.겨운이의 물건을 뺏기도 하고 버리기도 했지.처음에는 겨운이도 화를 냈지만 점점 말이 없어졌단다.

어느 날이었어.상호가 또 선생님 책상 앞으로 나갔지.

“오늘부터는 이겨운이랑 말하는 사람은 혼내줄 거야.”

상호의 말에 아이들이 웅성댔어.

“말도 안 돼.그러는 게 어디 있어?”

나도 모르게 소리 쳤어.그 말에 상호가 내 쪽으로 다가왔어.나는 움찔했지.그 때 겨운이가 빽하고 소리를 질렀어.

“됐어.누구와도 말하지 않을 거니까 아무도 괴롭히지 마.”

그 날 오후에 겨운이네 집 앞에서 겨운이를 기다렸지.저 멀리 걸어오는 겨운이가 보였어.그렇게 힘이 빠진 겨운이는 처음이었지.

“선생님한테 한 번 이야기 해보자.”

겨운이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어.

“이미 여러 번 이야기 했는걸.”

“그래도 다시 한 번 해보자.”

다음 날 나는 겨운이와 함께 선생님께 갔어.겨운이는 모든 이야기를 했지.선생님은 이야기를 다 듣고 알았다고만 했어.나는 선생님이 이상했어.엄청 화내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거든.선생님은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상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상호는 점점 겨운이를 더 괴롭혔고 겨운이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그리고 전화도 받지 않았지.처음에는 겨운이가 너무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함이 사라졌어.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어.전화를 끊자마자 나를 불렀지.

“너 겨운이 일 알았다며?상호라는 아이가 괴롭혔어?선생님은 알고도 모르는 척 했고?겨운이 엄마가 속이 상해서 인터넷에 올렸나봐.그것 때문에 교육청에서도 연락 왔다더라.무슨 위원회인가 열린다는데 거기에 가서 선생님한테 여러 번 이야기 했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 있냐고 묻던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그냥 가만히 서있기만 했지.그리고 그 다음 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어.

교장실을 나오고 나니 마녀의 말이 생각났어.내 소중한 것을 대가로 받아가겠다는 이야기 말이야.갑자기 걱정이 되었어.무엇을 가져갈지 겁나기도 했고.마녀를 찾아야 했어.창고로 뛰어갔지.창고로 가는데 문자가 왔어.

민우야,나 있잖아.유학 가기로 결정했어.잘 지내.

마녀가 가져간다는 소중한 것이 겨운이었나 봐.나한테 뛰어오던 겨운이가 생각났어.눈물이 막 나더라.창고에 갔더니 문이 잠겨있는 거야.마구 두드렸지.

“저기요.저 이민우요.거기 계세요?”

한참 후에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어.우둘투둘한 종기로 가득한 마녀가 나타났지.

“누가 이 마녀의 잠을 방해하는 거냐?”

마녀는 나인 것을 알고 흠칫 놀랐어.그리고 미안한 표정으로 변했지.

“내가 네가 다녀간 뒤에 너무 피곤해서 깜빡 잠들었다가 지금 깨어났지 뭐니.곧 마법을 걸어주마.”

“그러면 아직 마법을 걸지 않았다는 말이세요?분명히 딱풀로 붙인 것처럼 입술이 딱 달라붙어서 이야기할 수 없었는데?”

“나는 아직 마법을 걸지 않았는걸.미안하니까 제일 소중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덜 소중한 것으로 가져가마.”

마녀가 마법을 걸려는 듯 한 손을 들어 올렸어.나는 얼른 마녀의 손을 잡아 내렸지.

“저 소원 취소요.”

“뭐야,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어디 있어.”

아직 기회는 있을지도 몰라.나는 펄펄 뛰는 마녀를 뒤로하고 다시 교장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 <끝> 신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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