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그릇에 담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성’
통도사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천년이 넘는 고찰이다.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우리나라 불법승(佛法僧)을 대표하는 삼보(三寶)사찰의 하나다.자장율사가 가지고 온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 불보(佛寶)사찰인 통도사다.그리고 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法寶)사찰 해인사,유명한 스님을 많이 배출한 승보(僧寶)사찰 송광사가 있다.세계문화유산에는 ‘산사,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등재됐다.그 기념으로 이 조각 작품전을 열고 있다.
거친 퇴적암 조각 작품의 표면을 보면 거대한 바위로 솟아오른 전북 진안의 마이산이 떠오른다.지구 역사 전체로 보면 지표면은 그야말로 찰흙처럼 주물러져 여러 형상을 빚어왔다.깊은 바다가 물의 무게로 눌러 만든 퇴적암이 산꼭대기에 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특별히 뾰족하게 솟아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은 그래서 더 신비롭다.전체가 자갈이 뒤섞인 퇴적암의 일종인 거대한 역암으로 이루어져 있다.폭격을 맞은 듯 군데군데 동굴 같은 표면을 가진 마이산의 바위 덩어리와 이런 어린왕자 조각의 표면은 똑같이 닮은 질감을 가졌다.
조각가 이영섭은 어린왕자를 세계 곳곳에 묻고 꺼내는 작업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그런 거대한 프로젝트로는 크리스토가 세계를 돌며 벌였던 대지예술(大地藝術)의 예가 있다.미국 서부에서 태평양까지 몇 십 킬로미터를 이어 닿게 달리는 울타리,베를린 국회의사당 건물 전체를 몽땅 천으로 포장해 버린 것,파리의 퐁뇌프 다리를 다 감쌌던 것처럼 말이다.미국의 대표 작가 라우센버그가 세계를 다니며 각각의 문화 속에 깊이 들어가 자신의 회화 방법을 실험했던 ROCI(Rauschenberg Overseas Culture Interchange) 투어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그러니까 세계에 묻고 ‘발굴’해내는 어린왕자의 첫 번째 유명 장소가 바로 이번에 한국의 통도사가 된 셈이다.그런 여러 이야기가 어린왕자와 통도사의 인연을 제법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